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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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름다운 5월 성모성월이며, 아름다운 계절만큼 사랑할 기회가 주어지는 가정의 달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나눌 기회가 주어진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사랑과 기쁨으로 넘치는 달입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이 산란합니다. 내일이 어버이날이기에 이런 생각 저런 추억으로 인해 제 마음이 뒤숭숭하고 어수선합니다. 저의 산란한 마음이 지금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때’란 바로 예수님께서 이제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되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극진한 사랑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지만,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시는 주님의 말씀(13장)을 들은 제자들은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14,1)고 말씀하시면서 굳건한 믿음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도록 당부하십니다.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남 체험은 어떤 경우에든 세상에서 겪는 시련과 어려움의 시간을 지난 다음 더욱 굳건해진 믿음을 기반으로 하고 참된 내적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16.33)고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는 말씀은 마치 부모님이 먼 곳을 잠시 떠나시기 전에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하는 자녀들에게 ‘걱정하지 마. 엄마 곧 갔다 올 테니까!’라는 표현처럼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더라도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하지 말라고, 미리 제자들의 산란한 마음을 달래주려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기에 이내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14, 2~3)고 당신이 떠나야 하는 이유와 의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신께서 떠나야 하는 이유란 우리가 아버지 집에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함이고, 다시 오셔야 하는 까닭도 전부 우리를 그곳에 데려다가 당신과 함께 있게 하기 위함이란 것입니다. 이렇게 떠남과 다시 오심은 바로 우리를 영원히 아버지의 집에서 당신과 함께 머물고 살아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헤어짐은 잠시이겠지만 만남은 영원할 것이고, 슬픔은 순간이겠지만 기쁨은 영원할 것이니 지금 주어진 모든 것을 하느님과 당신께 대한 믿음으로 꿋꿋이 살라는 당부이자 다짐입니다. 인생이란 회자정리 곧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기 마련이고, 그리고 다시 만날 걸 기대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재차 확인하는 뜻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14,4)라고 말씀하시자 생뚱맞게 토마스가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14,5)라고 반문합니다. 이를 어찌할꼬!! 도대체 이런 토마스의 반문을 들으면서 예수님은 한 마디로 멘붕 상태였음에도, 자기가 한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토마스나 제자들을 야단치기보다 어쩌면 이런 터무니없는 질문을 들으시고 오히려 복음서에서 당신의 정체와 역할을 가장 분명하고 명쾌하게 드러내십니다. 사실 좋은 질문은 좋은 해답을 찾는 계기가 됨을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서 잘 드러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14,7)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버지께 가는 길이고, 아버지께 가는 길을 걸으면서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진리이신 아버지의 말씀이 우리 발걸음의 등불이며 이 빛을 따라 걸어갈 때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자유를 누리면 누릴수록 아버지의 생명을 얻고 더 얻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인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도달할 수 없다는 믿음의 여정과 영성의 길을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무이한 길입니다. 부활하신 다음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요20,17)고 하신 말씀에도 드러나듯이 당신은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무이한 길이며 통로입니다. 길이신 예수님이 가신 길은 바로 파스카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 어리석음의 길, 좁은 길이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길이지만 길이신 그분처럼 그 길을 지나가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 길은 이사야 말한 것처럼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드높이 있다.”(55,8)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이고(요17,17), 예수님은 진리이신 아버지의 말씀이시며 우리 가운데 오시어 아버지를 대신해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시기에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이신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고 진리이신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우리 역시도 진리이신 아버지의 말씀을 삶으로 증거하며 살아가도록 초대하고 축복해 주십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진리를 위해 몸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모두 진리이며 생명의 말씀이옵니다.』(성가 39번 참조) 하지만 우리는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막상 진리를 찾으면 꽁무니를 뺍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깨달으면 ’거짓되고 위선적이며 가식적인 자아‘가 죽어야 하기에 우리는 진리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을 감거나 도망치기 바쁩니다. 이런 거짓과 위선이 죽을 때 그 진리가 바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진리이신 아버지의 말씀을 위해 몸 바치는 거룩한 사람이 될수 있도록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입니다. 진리를 산다는 것은 쉽지 않고 힘듭니다. 

제1독서 사도행전에 의하면, 초대 교회는 믿는 이들의 수효가 점차 늘어나면서 본의 아니게 과부들의 식량 분배 문제로 불평과 갈등이 증폭되었습니다. 이때 사도들은 <공동체의 문제>는 곧 <하느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6,2.4)고 식별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합니다. 구성원들 사이에 일어난 불평과 불만의 주된 요인이 진리의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소홀히 한 탓이라 판단하고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사도들은 자신들의 파견과 소임에 충실하기 위해 부차적인 식탁 봉사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진리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붙잡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6,7)

예수님은 생명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양들인 우리가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요10,10) 우리를 위해 사랑으로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10,15) 그리고 생명을 얻고 또 얻는 길은 바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17,3) 그래서 오늘 2독서에서 베드로는 살아있는 생명의 돌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라고 당부합니다. 예수님은 본디 사람들에게 쓸모없다고 “버림받은 돌이지만 하느님께는 영적 집을 짓는데 요긴하게 쓰이는 모퉁이의 머릿돌이”(2,2~5참조) 되신 분이십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신 그분께 나아가는 사람은 이 땅에서부터 생명이신 아버지의 집을 짓는 사람이지만, 아버지께 가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주님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은 “차여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며,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정해진 대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그 돌에 차여 넘어집니다.”(2,8) 결국 생명이신 그분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그들은 생명이 아닌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되고, 그 길을 걸으면서 진리가 아닌 거짓과 빛이 아닌 어둠의 자녀가 되어 억눌리고 묶이며 눈먼 상태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나는 심판하지 않는다.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은 내가 한 바로 그 말(=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요12,47~48) 우리 모두 주님의 떠남이 마음을 산란하게 하겠지만, 예수님의 떠남이 영원히 떠남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가 영원한 사랑이며 생명이신 아버지 계신 곳에 우리도 당신과 함께하기 위해 떠남임을 굳건히 믿으면서 살아갑시다. 주님이신 예수님은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14,1)고 당부하십니다. 마음이 산란할 때마다 우리 함께 성가 34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를 그리고 성가 44번 「평화를 주옵소서.」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래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한결 마음이 편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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