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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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성찬례를 거행해 오면서, 저는 매일의 음식, 양식으로써 성체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어머니들은 매일의 양식이 무엇을 의미한지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들은 매일 먹을 양식을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로즈메리 하튼’이라는 작가는 『성체성사의 행위는 무엇보다도 여성들이 하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서 먹이는 행위다.』고 했습니다. 음식은 준비해야 먹을 수 있습니다. 준비하는 일은 사랑이 가득한 보살핌입니다.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은 보살핌과 사랑의 행위이고 결국에는 성체성사와 같은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처럼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부엌에서 힘겹게 살아오신 제 어머니는 뒤늦게 세례받으시고, 제가 사제가 되고 난 뒤 늘 ‘비천한 나에게 이런 신부 아들을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고 말씀하셨지만, 참된 사제는 진정 제 어머니이셨습니다. 제 어머니는 매일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부엌에서 사랑 가득한 음식을 준비하셨으며, 그러기에 제 어머니의 부엌이 바로 제단이며 성전이었음을 새삼 뼈저리게 느껴가고 있습니다. 제 어머니가 이 사실을 좀 더 일찍 아셨다면 참으로 행복하셨을 텐데. 사제가 되기에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랑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양식을 사랑으로 준비하고, 그 양식으로 먹이고 건강과 더불어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매일의 양식을 준비하는 전문가이시죠. 제 어머니는 아무리 부족한 재료라도 마술을 부리듯 뚝딱 음식을 만들어 배불리 그리고 맛있게 먹이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밥심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기에 제때 밥을 먹어야 했고 간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에게 신부 되고 나서도 친정엄마에게 전화하면 제게 하신 첫 말씀은 ‘밥 잘 먹고! 밥 잘 챙겨 먹고!’ 그만큼 엄마에게는 먹는 것이 참 중요했고 많이 먹이려고 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새우 미역국과 함께 겉절이김치입니다. 늘 친정집에 가면 새우 넣은 미역국과 함께 겉절이김치와 함께 밥을 해주시던 엄마가 그립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먹이고 싶고, 많이 먹이고 싶은가 봅니다. 

아마 주님의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역시 행여나 우리가 굶고 배고플까 봐, 늘 음식으로 저희를 찾아오셔서 잘 먹이고 많이 먹여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런 점은 오늘 복음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6,37)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곧 우리에게 향한 말씀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장정만도 오천 명이 넘은 군중들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신 모습(루9,11.17)에서 어머니와 같은 심정에서 배고픈 군중을 배불리 먹이셨잖아요. 주님께서 준비하시고 먹이신 양식은 바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너희는 영원히 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요6,51.54)고 말씀하신 성체와 성혈입니다. 가족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처럼,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시는 것 그것은 사랑이며, 또 다른 사랑이 되는 길입니다.

오늘 모든 가정에서는 예전처럼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것을 잃어버린 듯싶습니다. 수도원에서는 식사를 준비하시는 분이 계시며, 다만 명절 땐 출근하지 않습니다. 수도원에서는 연중 변하지 않은 것은 공동체 시간표입니다. 공동체 일과는 기도와 미사 시간, 식사 시간뿐이며, 이 시간은 바로 공동체 시간입니다. 사랑으로 준비하고 사랑으로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식사 시간은 공동체 형제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아카페의 공간이자 시간이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밥상은 단지 밥만을 먹는 순간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고,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한 가족임을 일깨우는 성찬례의 연장이자 실현이라고 봅니다. 우리네 삶의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식사 시간의 회복은 영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함께할 때, 가족의 삶과 가족 관계의 질이 변화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하느님은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 평범하고 하찮은 매일의 식탁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를 통해 서로 사랑하길 바라십니다.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를 통해서 하나 되어가는 모습에서 매일의 삶은 하느님께는 영광을 드리고, 가족은 사랑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탁 공동체의 회복이 성찬례 참여 의식을 심화시키고 성찬례의 의미를 보다 깊이 자각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체를 모실 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 모시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상화된 성체적 삶이 지속될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아주 비범한 은총과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고 생기로 가득 찰 것입니다. 

김지하 시인은 「밥」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 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 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이렇듯 밥(=빵)을 나누어 먹는 일은 자신의 존재를 나누는 일이기도 합니다. 동반자Companion라는 단어는 함께Com라는 단어와 빵Panis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빵을 함께 먹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빵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인생의 길을 함께 간다는 것이고, 나의 존재를 함께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부르는 것은 먹는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상호 간의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지는 일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먹는 일은 생존의 기반이기에 밥을 함께 먹는 일은 생명을 함께 나누는 생명의 축제이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나누는 사랑의 축제입니다. 이것이 오늘 축제의 의미라고 봅니다. 우리는 모두 아빠 하느님의 식구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되자 극진히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를 들고 기도하고 축성하신 후 나누어 주시며, 이 빵과 포도주가 당신의 살과 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 예식을 행할 때마다 당신을 기억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찬례는 바로 주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억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곧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고 재현함으로써 성체적 삶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성체적 삶의 시작이 됩니다. 사도 성 바오로는 기념과 기억의 제사, 사랑의 성체성사를 기억하며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3-24)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살기 위해 사랑의 성체를 자주 영해야 영적으로 건강합니다. 보약이 따로 없습니다, 성체가 그리스도인의 보약입니다. 밥심으로 살듯 聖體心으로 살아갑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리라.”(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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