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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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돌을 던지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10,33)

가끔 방송 매체에 ‘○○ 끝장 토론’이란 타이틀을 달고 하는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결론을 짓자는 의미이지만 대부분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토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계속된 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의 논쟁은 오늘도 이어지는데, 그 발단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자, 예수님께서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10,32)는 물음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유대인들의 주장이 쏟아집니다.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10,33) 라는 말로 자신들이 하려는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한 가지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시선과 접근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의문은 왜 예수님은 그들의 속내를 꿰뚫어 알고 계심에도 굳이 설명하고 설득하려 했을까? 결론을 낼 수 없는, 어떤 교집합도 타협점도 찾을 수 없는 영원한 평행선의 관계인데 왜!, 의문의 결론은 결국 그들에게 향한 증언이라기보다 바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향해 하신 말씀임을 “그곳에서(요르단강 건너편에서;10,39참조)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10,42) 라는 언급에서 해답을 얻습니다. 

“그 가운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10,31) 그 까닭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하고 하느님이신 것처럼 스스로 자처하였기 때문에 돌을 던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일찍부터 “내가 내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며 내가 누구인가를 증언해 주는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나를 보내신 아버지와 성경이 자신을 증언해 준다.” (5,36.37.39) 하고 밝히셨음에도 그들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은 “너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5,42) 라고 단정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재차 예수님은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을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10,38) 하고 말씀하십니다. 흔히 자녀는 부모의 말을 닮기보다 행동을 보고 닮는다, 는 말처럼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셔서 늘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하며,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5,19) 고 선언하셨으며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10,38) 라는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이신 당신은 하나임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형제이다, 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어느 그리스도인이 “나는 하느님의 아들(딸)이다.” (10,36) 고 말한다고 해서 돌을 집어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과 딸임을 증언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돌은 아니더라도 비난과 핀잔의 소리는 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다른 한 편에선 예수님께 돌을 집어 던지려 했지만, 그들의 손에서 벗어 나신 예수님께 몰려와서 예수님이 하신 일, 표징을 보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통해 그분께 몰려가 당신은 참 하느님이시며 참사람임을 고백하는 하루가 됩시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복음환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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