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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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20,22)
 
제자들에게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20,26)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실행하셨기에 제자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 사실 예레미야 예언자나 예수님은 참으로 당대의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갈수록 거부와 배척을 당하셨음에도 꿋꿋이 인간다운 행동을 하신 외로운 존재이셨습니다. 예레미야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심판을 선포하고 회개를 호소하였지만, 사람들은 그의 본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를 배척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해 주는 싸구려 가짜 위로를 찾았습니다. 어떤 누구로 대체할 수 없는 오직 그 사람만의 고유한 존재 이유와 의미를 망각하고 단지 듣기 싫고 불편하고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 그를 싫어하자,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자신의 진심을 알아 달라고 울부짖습니다. 하기야 우리 역시도 진실한 간언과 충고를 듣기 싫어하잖아요.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닥칠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지만 생뚱맞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자신의 두 아들에게 남보다 높고 좋은 자리를 부탁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20,22) 고 묻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고 응답하자,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0,23) 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듣고 있던 제자들이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자, 예수님께서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남보다 더 높은 지위나 학력, 재산이나 신분을 믿고 갑질하지 말라, 는 말로 들려옵니다. 이런 제자들의 철부지 같은 생각을 알아차린 예수님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요. 예수님은 스스로 섬김을 받는 삶이 아니라 섬기는 삶을, 남에게 짐을 지우는 존재가 아니라 남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치러 오신 종이 되어 오신 분이십니다. (20,28참조) 우리는 언제쯤 예수님의 높고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주님은 단지 제베데오의 두 아들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우리 모두를 불편하게 합니다마는 우리는 이 질문을 회피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 깊이 듣고 마음에서부터 솟아오른 진솔한 답변을 주님께 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 질문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는 그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과 신앙의 현실 그리고 상태를 깨닫게 되리라 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이 질문의 의도를 깨닫게 된다면, 분명 우리의 실존과 신앙은 근본부터 달라질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온통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총총거리는 걸음걸이는 아니지만 느리고 더디더라도 좁은 보폭으로나마 곧장 주님께 나아갈 것입니다. 주님의 잔을 함께 마신다는 것은 곧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과 그로 인한 고난과 죽음을 기꺼이 나누겠다는 의미이며 또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정말 주님께서 마셨던 잔을 마실 수 있는가? 

어쩌면 저는 무식하기에 용감하다, 는 표현처럼, 아니면 예수님께서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 모른 채” (20,22참조) 할 수 있습니다, 고 응답했습니다. 사실 제가 마셔야 할 수도자나 사제로서의 잔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기에 겁 없이 마시겠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나, 이제야 알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3차례 곧 주님 앞에서 종신서원을 할 때, 부제품을 받을 때 그리고 사제서품을 받을 때 주님께서 3번이나 제게 물으셨지만, 이 질문의 무게를 깨닫지 못한 채 입술로만, ‘할 수 있습니다.’(22,22)라고 대답했지, 그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실제로 3차례나 주님 앞에 부복했고, 이를 통해 주님께서 마신 잔과 가신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따르겠노라고 응답했었습니다. 말인즉 ‘네, 할 수 있습니다.’라고 응답했지만 삶을 살면서, 주님 보다 제가 생각한 영광의 주님 이미지와 신상神像이 무의식 속에 깊이 잠재되어 있었기에 온 존재로 응답을 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도 생활을 통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을 자신에게 묻고 응답해 오면서, 주님을 아는 만큼 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고 이런 저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저는 수도 생활의 초기보다 더 응답한 만큼 살려고 합니다. 이제 또다시 주님께서 제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도 마실 수 있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베드로 사도께서 주님께 드렸던 응답처럼,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라고 밖에 응답할 수 없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저는 주님의 도움이 없으면 감히 그 잔을 마실 수도 없고 마실 능력도 없는 존재입니다. 이는 제가 평소에도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라 맥주 한 잔도 거뜬히 마시지 못합니다. 즉 맥주 한 잔도 소위 ‘원샷’ 하지 못하는데, 주님께서 마셨고 제가 마셔야 할 잔 역시도 그렇게 단숨에 마시지 못하리란 걸 이제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육신적 고통의 수용에 있어서 그렇게 나약하지는 않습니다. 1977년 처음 병으로 쓰러졌을 때, 사지가 다 묶인 채 고통스럽고 외로운 병상에서 홀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께 드렸던 저의 고백은 지금껏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려는 믿음으로 모든 순간을 살아 있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며 살아왔다고 생각됩니다. 거의 46년 동안 심장박동기에 의지해서 살아왔고, 또 다른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고난의 잔을 잘 받아들이며 살아왔습니다. 이게 내 삶이고 나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이기에 저는 이 잔을 마시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잘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현재 제 상태입니다. 이런 육신적인 병으로 인한 술잔을, 고통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상에서 만나는 아주 소소하고 하찮은 삶의 잔을 마시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고통에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해졌기에 고통의 잔을 마시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면서 삶의 잔을 마시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힘들게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큰 고통은 때론 쿨하게 잘 받아들이지만, 요즘 매일 아침 기상하는 순간부터 느끼는 육신적 고통이나 아주 하찮은 불편함을 말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드린다고 기도하면서도 참 힙듭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작은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게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다가오는 삶의 잔을 꿀꺽하고 마시지 못한 저의 나약한 모습을 느끼면서 더 힘듭니다. 
   “주님, 당신은 사랑으로 모든 고난과 고통을 받아들이시고 심지어 고난과 죽음의 잔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저 또한 그런 당신을 바라보면서 용기를 갖고 일상에서 다가오는 삶의 잔을 잘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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