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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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15,32)

세상이 그를 버렸건, 그가 세상을 버렸건 홀로 버려진 채 살아가는 삶은 분명 두려운 상태일지 모르지만, 그 버려짐을 통해서 더 깊은 인격적 관계를 회복하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며 천국을 얻을 수도 있음을 오늘 독서와 복음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멀리 떠난 우리를 잊지 않고 보고 계시며 우리의 어려움을 다 아시지만 스스로 되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잘못한 채 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미7,14)은 뒤늦게야 하느님만이 자신들의 의지이며 피난처임을 알고 손을 내미시는 주님을 향해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며, 또한 가엾이 여기시고 허물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미7,18~19) 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자신들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홀로 버려진 채 살아갈 때 뒤늦게나마 되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과 되돌아 갈 그곳에 자비롭고 너그러우신 (화답송 후렴) 아빠 하느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다, 는 현실을 깨닫고 되돌아갈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이 이토록 사무치는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기쁜 소식이며, 아빠 하느님의 자비가 바로 우리의 복음입니다. 일어나 아버지께로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의 설렘보다 아버지의 셀렌 기다림의 무게가 더 크기에 먼저 알아보시고 달려와 되돌아온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 기쁨에 넘쳐 “송아지를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이며 너의 아우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15,24,32)라고 외치는 모습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이런 아빠의 돌아온 자식에 대한 자비롭고 너그러운 마음은 단지 성경의 작은 아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대한 마음입니다. 이것이 아빠의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아빠 하느님은 우리의 죄까지도 허용하시기에 우리의 되돌아옴과 뉘우침 또한 허용하십니다. 형제를 용서할 수 있을지, 아니면 못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단지 돌아온 아들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향」이라는 그림을 연상해 보길 바랍니다. 이 묵상 글과 함께 읽으면서 렘블란트의 「탕자의 그림」을 상상하면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밖에서 안으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끌어들이시길 바랍니다. 대략 설명하면, 그림의 전체 구도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습니다. 누더기 옷, 다 해진 신발과 상처 난 발바닥은 그가 집을 떠나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는지 말해 줍니다. 그의 머리는 막 태어난 아이의 모습처럼 삭발인데, 이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보여 줍니다. 동생을 안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는 큰아들은 어둡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그 얼굴에는 시샘과 질투, 그리고 분노가 가득 차 있습니다. 아버지의 행동이 못마땅한 것입니다. 아들을 안고 있는 아버지의 두 손은 서로 다릅니다. 왼손은 크고 강인한 손 모양으로, 세상의 어떤 위험에서도 아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아버지의 손입니다. 오른손은 작고 부드러운 손 모양으로, 아버지가 다 품지 못한 사랑을 섬세하게 품어 주는 어머니의 손입니다. 아버지의 얼굴은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다가 늙어 버린 모습입니다. 그러나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는 안도감으로 자비롭고 평온하게 보입니다. 한쪽 눈은 집 나간 아들을 그동안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눈물로 짓물러 거의 실명 상태입니다. 그러나 눈가에는 분노가 아닌 사랑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대략적인 그림의 피상적인 묘사인데 여러분이 먼저 성경 본문을 읽고 난 뒤 이 그림을 아버지의 시선에서, 작은아들의 시선 그리고 큰아들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의 작은 아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며,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에서 떠남과 되돌아옴의 과정처럼 우리 역시도 거의 흡사한 영적 여정을 통해서 참으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며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마음으로 깨닫게 되고 새롭게 거듭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뒤에야 깨닫는 자신의 어리석음,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가족의 일원이며 가족에 소속되어 있다, 는 사실입니다. 사실 탕자에게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삶의 행복은 ‘아버지’ 존재이며, 이 아버지와의 관계는 바로 그 자신이 그토록 묻고 또 물었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붙들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물음으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하느냐를 깨달을 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된다는 진리입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되고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해서 골수에 새긴 것은 바로,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며,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 는 사실처럼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참된 자신을 찾고 만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자! 그렇습니다. 자기 잘못과 실패, 무책임한 행동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아버지의 사랑만을 기억했기에 작은아들은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아들처럼 우리 역시도 감정보다 행동을 앞세우며, 사랑이 기다리고 있음을 신뢰하고, 불안해하면서도 기어코 돌아가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음을 기억합시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집을 나간 뒤에 그곳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집을 나가던 순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다, ’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어쩌면 떠나고 돌아오는 건 하나의 과정일지 모릅니다. 특히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는 가지 마라, 고 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마도, “그래. 아들아 가거라. 아마 상처를 입을 테고 사는 게 힘들어지고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심지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지만 한번은 겪어야 하기에 막지는 않겠다. 다만,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너를 기다리마. 또 네가 떠나는 순간에도 난 여기에 있겠다. 그렇다. 너와 나는 한 가족이고 나는 너의 아버지이고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사실은 잊지 않길 바란다.” 라고 말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아들을 기다리는 그리움은 눈물이 되고, 날마다 흘린 눈물 때문에 눈은 짓물러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저 멀리 길모퉁이를 돌아오는 몰골이 달라진 아들을 아버지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한순간에 아들을 향해 달려가서 아들을 안고 기쁨에 겨워 춤을 춥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아버지이시며 바로 우리 하느님의 본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과 잘못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이시고,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사랑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다른 이름 중 하나는 사랑이고 기다림입니다. 사랑은 기다림의 다른 이름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하느님의 이름은 사랑이며 사랑의 기다림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은 까닭은 바로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의 사랑을 미처 알지 못해 마냥 멀어지려고만, 떠나려고만 안달했던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가 떠난 그 자리에서 서서 기다리시는 당신 사랑을 의식하지 못하는 저희의 눈멂에서 사랑으로 눈뜨게 하여 주십시오. 저희가 머물러야 하고 아버지 곁에서만 참된 저희 자신이 될 수 있는 당신의 집을 향하여 거침없이 달려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사랑만이 저희의 희망이며, 사랑만이 저희의 구원이기에 사랑이 있는 아버지 집을 향하렵니다. 아버지가 계신 집만이 저의 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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