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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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5,36.45)

흔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는 표현이 있는데,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5,42) 고 질책하십니다. 사람과 사랑의 관계도 그렇지만, 하느님과의 사랑에 있어서 사랑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인가 봅니다. 사랑이 떠나가면 목이 뻣뻣해지듯 마음도 멀어지고 굳어지며, 사랑도 한낱 그림자로밖에 남지 않겠지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마도 사랑의 관계인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라고 할 수 있는 마음 준비입니다. 가장 우선한 마음 준비는 곧, ‘깨끗한 마음’이며 하느님으로만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고 ‘갈라지지 않는 마음’을 준비하였다면, 능히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의 광야를 횡단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내 자신들을 질곡에서 이끌어 내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하느님의 길에서 그토록 빨리 벗어나 우상에게 절을 하고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탈32,8) 라고 거짓된 사랑에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5,42) 고 거듭 강조하고 계십니다.

어쩜 모세가 그러했듯이 예수님 또한 하느님 앞에 단독자로 홀로 서서 자신을 파견하신 하느님께 끊임없이 애원하며 기도하셨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사람들 가운데 머물면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일을 충실히 수행하지만, 눈이 멀고 마음이 닫힌 그들은 오히려 더 격렬하게 예수님의 정체성을 불신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했던 사람을 살리는 일마저 부정하고 거부하 는 그들의 닫힌 마음을 보시고서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셨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내 자신을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한다.” (5,31) 라고 언급하시고서,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5,32)고 증언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요한의 증언은 물론 어떤 사람의 증언도 당신에겐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한사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으며,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5,36.37) 고 밝히십니다. 아울러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셨다, 는 증거는 바로,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며, 그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5,36)라고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일들인 곧 사람을 살리는 일, 구원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닫히고 갈라진 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더욱더 격렬하게 부정하고 거부합니다. 그들에게는 광야를 거치면서 목이 뻣뻣했던 자기 조상들처럼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5,42참조) ‘하느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머무르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당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 (5,38)고 단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을 그렇게 단정해서 말씀하신 근거란 바로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5,39) 는 말씀에 내포되어 있고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당신 파견의 근거와 사명의 목적이 하느님 아버지이시고. 그 모든 일의 진정성은 바로 자신이 하는, 사람을 살리는 일과 사람들에게 생명을 얻고 더 얻도록 하시는 일이다, 고 증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믿지 않으니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5,45)고 그들에게 칼끝을 돌리십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복음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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