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수요일

by 언제나 posted Apr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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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종은 제자의 귀와 혀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시고,  제자의 귀를 일깨워 주시며, 귀를 열어 주시기에 거역하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았다.>(이50,4.5) 이런 종의 자세야 말로 참된 제자의 표상입니다.

 

우리는 이미 유다의 배반을 알고 있기에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했지.>라고 그를 단죄하고, 그래 본디 ‘그는 그런 사람이었잖아’ 라고 너무도 쉽게 단정 짓습니다. 유다가 은돈 서른 닢에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전부터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Jn12,4)라고 유다가 말할 때, 성서는 부언해서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며, 돈주머니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12,6)는 언급에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예수님을 팔아넘긴 배신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다만 왜 이토록 유다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의도는 무엇일까? 배신자가 받아야 할 죗값에 대한 응징인가 아니면 유다의 배신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反面敎師로 삼으려는 것인지 깊이 성찰해 봐야 합니다. 혹여 우리 또한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면피할 생각마시고요.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좋았을 것이다.>(26,2) 이는 단지 유다에게 저주를 퍼붓는 표현이 아니고 그의 불행한 결과를 언급하면서 또 다른 배신과 배반을 경고하려는 의도입니다. 유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출생은 본인의 선택이 아니잖아요. 그 또한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제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배신한 까닭은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끝내 자기가 자기 자신을 배신할 수 없었기에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물론 그가 매일 매일 <귀를 일깨워 주시고, 귀를 열어 주시는> 스승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듣고 말씀대로 살았다면 그리고 그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수용하였더라면 배신하지는 않았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유다에 대한 저의 어쭙잖은 연민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는데 이사야 말씀을 통해 잠잠해 지고 위로가 됩니다. 내 생각 보다 주님의 생각이 월등하고, 내 길(My way)이 아닌 주님의 길(The Way)이 正道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이55,8)는 말씀은 유다가 들어야 했던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