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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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로 돌아가 가만히 있어라! >그렇게 세월호 희생자들은 구조를 기다리다가 죽어갔습니다. 이는 단지 세월호만이 아니라 미국의 9.11 테러 때도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중 한 건물에 첫 번째 비행기가 충돌했을 때도 이런 안내방송이 나왔다고 하군요. <이 건물은 안전하니 계속 근무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이 건물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뛰쳐나온 1,400명은 살아남았지만, 안내방송을 믿고 계속 근무하던 600여명의 대부분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독일의 유대인 대량 학살인 홀로코스트 비극을 알리는 증후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정부 발표를 그냥 믿었기에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걸가요? 왜 인간이란 존재는 악한 권위에 도전하기보다 순종하는 쪽을 택하는 걸까요? 진정 참된 권위란 어떤 것일까요?

 

오늘 복음은 참된 권위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안식일에 가르치셨는데, 그분의 가르침에 사람들이 몹시 놀랐는데 그 까닭은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Lk4,31~3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권위(=엑수시아)는 ‘힘’을 뜻하며, ‘內的活力인 디나미스’의 충만한 결실인 外的活動을 뜻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다는 표현은 결국 예수님의 말씀에 하느님의 영의 내적활력의 외적활동으로 표출인 것입니다. 이는 바로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첫 가르침(=복음 선포)의 자리였던 나자렛 회당에서 선언에 이미 드러난 능력이며 힘인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곧 하느님의 힘(=성령)을 바탕으로 하는 창조의 능력, 치료와 치유의 능력, 구마 능력 등이 담겨져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말씀의 힘이 전달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군중들이 몹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들의 ‘놀람’은 당연한 반응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에 힘이 있다는 사실은 단지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 역시도 강하게 느꼈기에 스스로 당황스러웠는지도 모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도 놀랐는데 하물며 영의 기운을 알아차린 그 영이야 얼마나 놀랬을까요. 그러기에 자신도 모르기에 큰 소리로 외쳐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마귀 역시도 무서움에서 놀라 크게 소리를 지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4,35)는 말씀으로 더러운 마귀를 쫓아내시고, 마귀의 영으로 고생하던 그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가르치신 것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말씀 한 마디로 더러운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은 더욱 놀라 수군거렸습니다.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4,36) 이로써 당신의 첫 사도직 활동이 화려하게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 물론 군중들의 반응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에 권위와 힘은 다른 어떤 지도자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권위와 힘이었기에 더욱 놀랐던 것일지 모릅니다. 지금껏 권위를 가지고 자신들을 가르쳤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전혀 다른 아우라Aura와 파워를 느꼈기에 더욱 놀라마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이미 지난 주 복음 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의 지도자들에게 향한 질책의 이면에는 바로 그들의 언행불일치에 따른 위선적이고 권위적인 면이었잖아요. 하느님의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르침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치고, 말만 할 뿐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권위가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를 기념하면서 새삼스럽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고도 하는데, 예전에는 전자의 의견에 동의했다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습을 보면서 저의 견해는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는 것에 더 힘이 쏠립니다. 교황이라 호칭하든 교종이라 호칭하든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어떤 분이 착좌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무게로 닥아 올지 몰랐습니다. 하느님의 권위는 봉사하기 위한 권위이고 섬김의 권위입니다. 즉 봉사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봉사하러 오셨고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 오신 분이심을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통해 저희에게 새롭게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교회 안의 고위 성직자들의 권위는 하느님의 말씀이 먼저 권위자들의 말과 행동에 스며들고 살아 움직이며, 그들의 시선이 가장 낮은 자리로 향하고 그들에게 섬기는 삶으로 드러날 때 입증된다고 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서 느낀 점은 권위란 그 자리에 앉은 분이 그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에게서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라고 다시금 확인해 줍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시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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