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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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1, 44)

오늘날 나병을 일컬어 ‘한센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게르하르트 한센은 노르웨이 베르겐 의대 교수였습니다. 베르겐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센인 요양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센은 그곳에서 나병 연구에 평생을 바쳤으며, 마침내 나병으로 생기는 혹 안에서 나병균을 발견합니다. 그리하여 나병은 유전이 아니라 전염병임을 증명했던 것입니다. 이후 나병은 그의 이름을 따서 한센병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나병 환자들의 고통의 소리를 듣고 그들을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헌신했던 한센의 사랑이 많은 나환자들에게 사랑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도 나환우들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머물면서 그들 몸과 마음의 병을 치료와 치유하면서 사랑의 기적을 실천하고 계시는 모든 종사자에게 감사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 나환자의 목소리에 곧 고통받는 자의 목소리에 제 마음의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화답송의 후렴인 “주님, 당신 자애로 저희를 구원하소서.”(시44,27)라는 기도가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슬람의 예언자 ‘루미’라는 분은 심한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울어라. 당신의 고통에 둔감하거나 침묵하지 마라. 슬퍼하라, 그래서 당신 안으로 사랑의 젖이 흐르게 하라.』고 권고합니다. 이는 곧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하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고통을 자비로 감싸 안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비는 본디 함께 있고, 함께 느끼고, 함께 괴로워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 가슴이 먼저 자신의 고통이나 괴로움을 피하지 않고 느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수용할 때 자비는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자신의 고통과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함께 머물 수도, 함께 느낄 수도 없습니다. 인내patience라는 단어는 라틴어 patior고통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틱낫한 스님은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고통을 염려합니다.”라고 표현하도록 제안하셨더군요. 이는 타인이 아니라 고통을 겪고 있는 본인에게 향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질병으로 고통스러운 자기 자신을 자책하거나 자학하기보다는 어떤 경우에서든지 먼저 자신의 고통을 자비로 끌어안기가 참으로 필요하고 요구된다고 봅니다. 저의 아픈 허리와 다리도 저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나 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의 나환자는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까지 스스로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고 어려움을 준다고 생각하여 자책과 자학으로 지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고립되어 혼자라고 뼈저리게 느낄 때, 심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어머니와 인정 많고 관대한 아버지의 자비로운 가슴에 어린아이처럼 안기고 싶어 합니다. 어쩜 나환자는 어머니시고 아버지이신 하느님 자비의 품 곧 예수님의 품에 안겨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같습니다. 저에게 제 영혼은 젖 뗀 아기 같습니다.”(시131)라며 노래하고 싶었으리라 느껴집니다. 자신의 딱한 처지를 헤아려 주고 치유해 주려는 품에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맡기듯이 나환자도 역시 예수님의 자비하심에 자신의 육신적이고 심리적인 아픔과 고통을 내맡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심정을, 특히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내적 아픔을 릴케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안기기를 갈망합니다. 당신 가슴의 위대한 손에 오, 지금 그 손으로 나를 안아주오. 그 안에 나는 이 파편들과 내 삶을 내려놓습니다.』

‘존 오도노휴’라는 켈트족 시인은 「영원한 메아리」라는 책에서, 『기도는 열망의 목소리다. 그것은 오래된 소속감을 찾기 위해 밖을 향해 그리고 내면을 향해 손을 뻗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나환자는 잃어버린 소속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향해 자비와 구원의 손을 뻗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내면을 향해 ‘자신의 상처 받은 몸과 마음’을 진심으로 끌어안고 경청하면서 화해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기 이전에 먼저 자신의 상처받고 무디어진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신은 정말 예수님께 무엇을 바라며 청하고 어떤 존재로 살기를 원하는가? 이럴 때 나환자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는 마음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참으로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알게 될 것이고, 깨닫는 만큼 진솔하고 절박한 기도가 쏟아져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1,40)라는 청함은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청함이었기에 ‘자신을 깨끗하게 치유해 주실 분’으로써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간청합니다. 그 간청은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지 않고 먼저 예수님의 의지, 곧 ‘스승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하실 수 있으신 예수님의 선한 의지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예수님의 자비에 온전히 자신의 치유를 내어 맡깁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그의 간절함과 겸손함을 마음으로 들으시고, 치유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사랑의 연대 표지로 손을 대시고 나서,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1,41) 고 치유하십니다. 결국 오늘 복음에서 자비로 그 나환자와 그의 간청함을 안아주시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자비의 품 안에서 젖떼는 아기처럼 참된 소속감과 하나됨을 체험한 나환자는 사랑으로 녹아들었으며, 사랑과 자비를 체험한 그는 가장 강력하고 진솔한 복음 선포자로 변화되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상처받은 사람만이 참으로 타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자비의 향기를 풍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1,44) 고 당부하였지만,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1,45) 사랑받는 자는 때론 자신이 체험한 은총의 사건을 퍼뜨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전달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치유하신 하느님께 대한 영광의 외침이며 또 다른 은총의 사건을 예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복음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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