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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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어라.” (3,5)

사실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단지 손의 한쪽만이 장애이지만, 예수님 시대엔 그 하나 때문에 어디 가서든지 제대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우리 시대에도 아직도 그런 시선이 남아 있긴 합니다. 그래서 한 손의 장애가 낫게 될 때야, 그는 사람들 앞에서 온전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신체적인 장애는 없지만 영적인 한 가지 장애 때문에 하느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사람은 바로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에나 마음이 오그라든, 마음의 시선이 비뚤어진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시큰둥해하고, 다른 사람들의 선한 행동을 깎아내리고, 착한 행동에는 토를 다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신체적인 장애든 마음의 장애든 그 한 가지를 낫게 되면 사람 앞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도 온전한 사람으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체적-심리적-영적인 면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다 장애인입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아무튼 인지하거나 인지하지 않거나 그 장애에서 치유 받을 수 있기 위해서, 우리 또한 우리의 장애가 무엇인지를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기도하러 들어가시다가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보시고 그를 고쳐 주려 하십니다. 그런데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바리사이들은 실제로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고쳐 주실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를 감지하신 예수님께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불러내어 회중 한 가운데 서게 하십니다. (3,3참조) 물론 지금껏 그 사람은 회중 가운데 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늘 한쪽 구석에 서 있었습니다. 흔히 장애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기에 타인의 시선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사람들 가운데 서 있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은 뒤쪽이나 무의식적으로 구석 자리에 머물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이 더 이상 남의 눈치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건강한 사회가 되었지만, 아직도 미흡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불러내어 회중 한 가운데 서게 한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과 더불어 여러 가지 느낌들이 밀물처럼 밀려왔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의도는 바로 이 사람을 통해서 자기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바리사이들은 물론 그렇게 오랫동안 낡은 관습에 젖어서 죄인 아닌 죄인처럼 살아왔던 오그라든 사람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일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 특히 안식일에 관한 하느님의 뜻을 가르칠 기회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위험한 일이지만, 그만큼 신앙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가르칠 기회로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고발하려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3,4)고 물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기회가 좋든 나쁘든 상관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서 늘 하느님께서 여기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며, 하느님은 사람을 사랑하시어 당신 자비의 손길을 뻗으신다는 사실을 말씀과 행동으로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눈이 곧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데, 바리사이들은 참으로 비딱한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오그라든 마음, 비뚤어진 마음의 상태가 문제의 근원이었으며, 그런 마음이 바로 눈을 통해 드러났다고 봅니다. 콩깍지가 낀 상태에서 이를 바라보는 그들에게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헤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3,4)라고 물었음에도 그들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까닭은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말씀이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어 버린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비굴한 태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노기 띤 눈빛으로 그들을 둘러보시며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보시고 슬퍼 탄식하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손을 펴라.” (3,5)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완고한 마음을 보시고 한 편은 몹시 안타까워하며, 다른 한편 그들에게 화를 드러내셨습니다.

사실 저는 성깔 있는 남자입니다. 저희 형제들과 차이가 있다면 저는 어떤 면에서 형제들보다 건강한 까닭은 화를 적당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잘 아시는 것처럼 느낌은 윤리성이 없으며, 느낌은 내적 상태의 표현이며, 때론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이런 부정적인 느낌은 불편하지만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표현하는 것이 건강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화, 제대로 내기」의 저자 ‘버트 게찌’는 화를 진정시키는 3단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억누르지 마라. (=참지 말라), 둘째, 올바르게 표현하라, 셋째, 빨리 안정시켜라.(해질 때까지 화를 풀지 않으면 안 된다) 』 물론 예수님께서도 의노 즉 화를 내셨지만 적절하게 표현하셨으며, 오히려 그런 마음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뻗어라, 손을 펴라고 말씀하십니다. 손을 펴는 것은 자신에게 향한 개인적인 행동이라면, 손을 뻗는다는 것은 타인과 세상을 향한 공개적인 행동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이 말씀은 단지 그 사람에게만 하신 말씀이라기보다는 마음이 완고하고 오그라든 우리 모두에게 마음을 펴라, 마음을 열어라, 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주님의 이 자비롭고 인자한 명령을 듣고 세상과 타인을 향해 손을 뻗고 마음을 활짝 열어 봅시다.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주는 일이 바로 아버지의 뜻 곧 사람을 살리는 일이며, 이는 바로 좋은 일이며 합당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이 이를 알고 있으며 믿고 있는 그리고 살고자 하는 삶은 바로 하느님 모상적 존재이고 자녀인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일이 바로 아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이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통해서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낫게 해주는 일이 사람이 해야 할 꼭 알맞은 일이며, 좋은 일이기 때문이겠지요,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이 옳은 일이란 것은 결국 그 일이 하늘의 뜻이며, 하늘은 뜻이란 사람을 살리는 데 있고 그 일을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이었기에 예수님은 단지 천명에 순응한 것뿐입니다. 

● 내일 1월 17일, 1969년 5월 사제 서품을 받고 9월 한국에 파견되어 저희와 54년 동안 함께 생활하던 손 어진 신부님(Thomson Richard Joseph)께서 건강 등의 이유로 본국 미국, 루이빌 수도원으로 돌아가십니다. 손 신부님은 관구 이적을 하지 않고 저희 한국 순교자 관구 소속으로 거주지만 옮깁니다. 부디 낯선 곳(?)에서 몸도 마음도 편히 행복하게 생활하길 간절히 기도하며, 여러분의 기도 안에서 기억하고 기도해 주길 바랍니다. 신부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히 살아가길 바라며 감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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