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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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면 생태계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욕구와 의도 등 각기 다른 것들이 함께 공존하니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호 모순된 감정 때문에 마음이 찢기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헤어나지 못한 때도 있고,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어.’라고 탄식을 쏟아 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그 무엇을 향한 우리의 내적 궤적은 한 단계로 직진하며 나아가는 단선적 발달이 아니라 끝없이 돌고 도는 나선적 발달 과정입니다. 나란 존재가 변하지 않았을 터이지만,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앎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뚜렷하게 깊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이런 과정은 끊임없이 부단하게 나의 내면을 보려는(=시각, 관점) 행위에 매달린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기에, 자기 내면을 직시하려는 행위를 어떤 이는 ’마음 오디세이아‘라고 표현하더군요.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난달 몇 년 만에 저는 중국 실크로드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짧은 여행이든 긴 여행이든, 도시든 사막이든 여행하고 돌아오면 생각이나 느낌이 참 많아집니다. 예전 베트남에서 되돌아왔을 때도 지금과 아주 다른 내적 갈등과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관구 봉사자 소임을 끝내고 안식년 1년, 안성 성요셉병원에서 원목으로 3년 그리고 벳남에서 3년간 생활하고서, 무려 7년 동안 공동체 외부에서 생활하고 공동체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빠르게 변한 것처럼 수도 생활도 참으로 빨리 변했더군요. 그때 저는 변화된 현실의 높은 장벽에 갇힌 듯싶었고,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어 갇힌 듯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오늘 복음의 좋은 진주를 찾은 상인이 부럽게 느껴졌었습니다. 보물과 진주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처분하고 과감하게 자신이 찾은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부러웠습니다. 그 까닭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는 저 자신이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분명 좋은 진주, 곧 하늘나라와 그 가치를 살고자 하는 열망이,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식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오늘 복음은 저에게 좋은 진주를 찾을 곳이 어디인지 묻지 말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찾도록 저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어제 찾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어제와 다른 더 좋은 진주를 찾고 발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도록 호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고 발견한다면 더 이상 미련이나 후회하지 말고 과감히 가진 것을 다 처분해서 사도록 촉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습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13, 44~46) 오늘 말씀은 하느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를 가르쳐 주는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물을 우연히 발견하든 또는 진주를 애써 찾다가 얻었든 귀중한 것을 발견한 이들은 한결같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구매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보물이나 진주가 자신들이 소유한 것을 다 처분해서 매입해야 할 만큼 투자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처분함으로써 여러 가지 불편하고 어려운 점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자신들이 찾길 원하던 귀한 것을 획득했다는 기쁨이 더 컸기에 그런 결단을 내린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그 귀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겐 별로 소중하거나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나라는 마치 보물과 진주를 발견하고 귀하게 여겼기에, 모든 것을 다 매각하고 구매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늘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하늘나라를 발견했을 때, ‘발견하고 찾은 기쁨’이 너무 행복했기에 기꺼이 자신의 전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사는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물과 진주를 발견하고 그것을 구매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이 바로 하늘나라의 놀라운 가치를 대면한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가치에 압도되어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적합한 삶을 살아가고자 전 존재를 바쳐 투신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외칩니다.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고귀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 3, 8)

저는 낚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낚시하러 갔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물을 쳐 본 적은 한 차례도 없을뿐더러, 어떻게 그물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벳남에 살 때 무이네 바닷가에 가서 어부들이 그물로 고기를 잡는 광경을 가끔 보긴 하였습니다. 무이네 어부들은 ‘통버이’라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바구니 배로 연안으로부터 수백 미터 이상을 나아가 물고기와 게나 새우 등을 잡기 위해 그물을 던집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떠 있는 수많은 통버이의 모습은 아침 햇살과 더불어 참으로 볼만한 장관입니다. 물고기를 잡은 통버이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모래밭으로 끌어올리고, 그런 다음 가족들이 함께 잡은 물고기나 다른 것들을 선별하고 분류해서 팝니다. 아직도 그때 보았던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13,47)고 예수님께서는 표현하십니다. 하늘나라가 그물과 같다고 하니 여러분들은 이해되시고 ‘깨달으셨습니까?’(13, 51) 어쩌면 그물의 비유를 깨달아야 만이 하늘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 학자가 되고,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3,52참조) 잘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인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4, 19)하고 부르셨으며, 그러자 그들은 즉각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하늘나라란 고기를 잡는 그물질과 유사합니다. 바다는 마치 세상과 같은 개념이며, 이 바다에는 하느님이 누구신지 아는 사람도 그리고 아직 하느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도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도, 희망으로 넘친 사람도 절망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봅니다. 그런 바다는 때론 잔잔할 때도 있고 엄청난 파도가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 여건에서 하늘나라의 그물질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일단 세상이란 바다에 그물을 던져 그물에 잡힌 고기를 모래사장에 끌어올릴 것입니다. 그 그물 안에는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죄인도 의인도 함께 걸려드리라 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던진 그물에는 흡사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마태 5,45)듯이 모든 종류, 즉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 비싼 어종魚種과 값싼 어종들이 그물에 걸려 올라오리라 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물을 쳐서 잡아 올린 고기들을 뭍의 모래밭으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크고 좋은 고기들은 그릇에 담고 작고 나쁜 고기들은 밖으로 던져 버리는 일은 교회의 지체들인 우리들의 일이라고 봅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소임과 직책이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다 함께 사람 낚는 어부들입니다. 좋은 고기인지 나쁜 고기인지 선별하는 식별작업을 위해 교회 공동체 지체인 우리는 영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식별력은 우리 시대에 정말 중요하고 막중한 능력이며 책무이기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식별할 힘은 아무래도 ‘하늘나라의 교육을 받은 학자(=여기서 학자란 좁은 의미에서 성직자에 국한한 것이 아님)만이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런 식별력은 끊임없는 기도 생활을 바탕으로 신학적인 지식과 함께 풍부한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이 적합하리라 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신 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13, 51) 하고 물으십니다. 비유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그 가치를 살아가는 제자들의 삶으로 드러납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 학자는 모름지기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13, 52)과 같아지기 위해서는, 오늘 독서의 솔로몬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과 선과 악을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는 마음”(1열3, 9)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진정 하늘나라의 곳간지기는 머리를 잘 굴릴 수 있는 능력이 아니고, 마음을 잘 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며 이런 사람은 어느 때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문제를 만나든 늘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아닌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시선에서 문제를 바라보기에 적절한 지혜로 대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닫힌 마음이 아니라 마음이 열려있고, 더욱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에 누구에게 상처를 주거나 누구를 희생하는 편협된 지혜가 아닐 것입니다. 이 지혜는 타인의 행복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마음이기에, 타인을 자유롭게 그리고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나라의 곳간지기는 언제나 현명한 솔로몬처럼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성령의 이끄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화답송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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