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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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루, 여러분은 대화 가운데서 혹은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방송매체를 통해서 몇 번이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표현했거나 들으셨나요. 사랑이란 단어는 분명 너무나 아름다운 단어이지만, 또한 사랑은 너무나 흔한 단어가 되어버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역설적으론 사랑하며 살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분명 사랑에 대한 뿌리 깊은 열망을 품고 있는데도 자꾸만 다른 것들을 더 우선시하고 중요시하며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주어진 시간은 분명 한정되어 있지만, 많은 시간을 거의 다 명예, 재물, 권력 혹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를, 시간을 소진하고 소모하며 살아갑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 15,13)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막시밀리아노 콜베 성인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한 명의 수인을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걸었던 분이십니다. 성인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극적으로 살아난 그 사람의 이름은 ‘가죠프니체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훗날 자신을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걸으신 콜베 성인의 시복식에 참석하게 되었고, 영광스럽게 교황 바오로 6세도 알현하게 되었는데, 그 알현의 자리에서 가죠프니체크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고결하신 콜베 신부님께서 보잘것없는 저를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가시어 제가 그분 죽음으로 덤의 생애를 살게 되었는데, 신부님의 숭고한 죽음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하여 훗날 그분을 뵙기가 죄스럽습니다. 』

‘가죠프니체크’가 콜베 신부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고”(에페 1, 7)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 많은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가죠프니체크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돌아가신 성인을 생각하면서 성인의 죽음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음을 죄스럽게 느끼는 것 이상으로, 그보다 더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이 모든 계명의 으뜸이며 요약이다’, 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이중 계명의 실천 여부가 마지막 심판의 유일한 기준으로 제시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분명히 가르치시고 강조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그리스도인은 그러기에 마더 데레사 성녀가 평생토록 지키고 살려 했던 서원, 곧 『너 자신의 집에서 사랑을 전파하라. 사랑이 시작되어야 할 곳은 바로 거기니까.』라고 했듯이, 먼 곳으로 가서 사랑을 실천할 이유가 없으며, 세상의 단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 곧 ‘그 이웃’이 바로 ‘모든 사람’이며, 또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수단이기도 합니다. 경험적으로 볼 때 먼 곳에 있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은 깨지기 너무 쉽습니다. 그래서 항상 사랑에는 구원의 손길 곧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퍼줄수록 더 늘어나는 법이며 또한 사랑할수록 그 사랑은 점점 더 순화되고 더 순수해져 갑니다. 그러기에 어떤 분은 사랑은 자기 할머니 집의 ‘우물과도 같다‘고 표현하더군요.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사랑해’라고 표현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몸짓이나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일찍이 야고보 사도 또한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 2,14.17)

성 아오스딩은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도 사람도 있다고 가르칩니다. 사랑이 없다면 무슨 선한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성인은 강조합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것이 성인의 삶을 이끌었던 주된 동기였습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며, 하지 못합니다. 사랑이 있어 마음에 기쁨과 평화, 호의와 선의, 온유와 절제가 있는 사람은 결코 사악하고 거짓된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이는 결국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성인의 그리스도교적 존재론을 잘 표현한 것이라 봅니다. 

『사람이 왜 사는지 해답을 찾지 못해도 살아가지만, 누구 때문에 살아가는지 해답을 찾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는 이태리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이 왜 사는지 혹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몰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사랑할 대상을 찾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는 말씀은 오늘 우리가 들은 예수님의 이중 계명을 통해서 분명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 분명해졌으며, 이중 계명을 지키고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우리의 행복이며 존재 이유입니다. 예전 J.K 김동욱이 「불후의 명곡」이란 음악 프로그램에서 불러 화제를 모았던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랫말이 참으로 제 마음에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며 남아 있습니다. 아래 노랫말을 천천히 음미해 보시면서 주일 행복하게 보내십시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어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은 존재이고, 하느님을 닮은 만큼 그 사람의 삶은 사랑으로 충만하리라 봅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만큼 그 사람은 이미 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살고 있는 것이며, 삶이 다하는 순간 그 사람은 하늘나라로 들어가 영원한 사랑의 자리에서 사랑이신 하느님과 하나 되리라 믿습니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22, 37~40) ‘저의 사랑이시며 저의 생명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듯 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오늘 당신 사랑안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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