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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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은 단지 달력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신앙의 길라잡이와 같습니다. 위령성월의 연중 마지막 주일은 한 해 동안의 삶을 주님의 시선으로 돌아보고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다가오는 대림절과 성탄을 차분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찾는 주님은 너무나 가까이 계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지나쳐 버리기도 합니다. 그분은 성화나 상본에 나오는 고정된 이미지로 오시는 분도 아니고, 당신의 이름을 밝히고 도움을 청하시는 분도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오히려 우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서 누군가의 모습으로 나와의 만남을 계획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 안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얼굴로, 때로는 가까이에서 때로는 먼 곳에서, 친근하게 혹은 담담하게, 내가 만난 사람들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집에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열심한 구둣방 노인이 매일 한 가지 소원을 빌며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의 내용은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예수님을 뵙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간절한 기도 때문인지 어느 날 할아버지는 놀라운 꿈을 꾸게 됩니다. 예수님이 내일 할아버지를 찾아갈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서두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저녁이 왔는데도 예수님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찾아온 사람은 불쌍한 거지 청년과 과일을 쏟아 당황하는 상인, 그리고 굶주린 모자가 그 구둣방을 방문하였을 뿐입니다. 할아버지는 매우 실망한 채 잠자리에 들고, 다시 꿈을 꾸게 됩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다시 꿈에 나타났습니다.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따집니다. 예수님은 웃으면서 당신이 오늘 세 번이나 할아버지를 찾아갔노라고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의 모습이 구둣방을 방문했던 불쌍한 거지로 과일 장수로 그리고 불쌍한 모자의 모습으로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갈릴래아에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서 시작한 예수님의 활동은 이제 ‘최후의 심판’으로 끝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결론, 마지막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25,3 31~32) 

팔레스타인에서는 양과 염소를 함께 초원에 방목하다가 밤이 되면 목자가, 따뜻한 곳이 필요로 하는 염소를 양과 갈라놓습니다. 심판은 이렇듯 하나의 구분 작업입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 역시 이런 구분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갈라놓을 것입니다. 당신이 정하신 기준에 따라 판결 내리십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들을 자신과 동일시하십니다. 정작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어렵고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의 도움을 필요한 이들의 현실에 동참해 주길 바라십니다. 재물이나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비로운 마음을 원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25,40) 예수님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순명하는 이들을 형제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보잘것없고 나약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 뒤에, 곁에, 안에 서 계십니다. 그들 안에서, 그들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도움을 청하십니다. 우리는 단지 한 사람, 가난하고 힘든 이와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예수님과 관계하는 것입니다. 각자 안에 계시는 예수님 덕분에 인간은 존엄한 품위를 지녔고 다른 어떤 피조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일(=육화)의 이유이며, 그 사랑의 절정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25,34) 예수님이 오른편에 세운 이들은 열린 눈과 마음으로 자비를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단지 곤경에 처했기 때문에 그를 도왔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도움의 대가가 무엇인지, 돌아올 이익이 어느 정도인지에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의 필요를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다른 이의 삶을 북돋아 준 그들의 노력은, 삶의 가치와 무가치를 결정하시는 예수님께 완전히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왼편에 세워진 이들은 하느님 앞에서 추방됩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25,41) ‘영원한 불’이란 하느님의 축복과 생명에서 제외되어 겪는 고통입니다. 그들은 자비하신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은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좌절과 증오에 가득 찬 이들로 이루어진 무리에 떨어집니다. 이러한 결정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것이 됩니다. 

본문 전체에서 후렴처럼 반복되는 자선 행위는 결코 영웅주의에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남을 도울 때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마음, 자신을 훌륭한 사람으로 내세우고 싶은 마음, 봉사를 통해 자기 허물을 메우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선행을 베풀더라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나 봅니다. 도움이란 도움 받는 이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품위를 발견하도록 일으켜 세우는 일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웃에 계속 관심을 가지라는 가르침이자 도전입니다. 물론 모두를 돕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지만 우리 네 삶의 언저리에서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을 형제와 자매로 존중하는 것이 이웃사랑의 첫걸음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언제 지나쳤는지 하느님 앞에 가면 알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앞에 전전긍긍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심판은 모든 것의 정체를 벗기고 본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 심판은 진실만을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결산해야 할 때를 맞이합니다. 심판은 개인적인 결산의 때이며 또한 온 인류가 함께 겪어야 할 결산의 시간입니다. 그 결산의 때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느냐를 따지지 않으시고 얼마나 사랑했느냐를 보시고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일이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축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참된 삶을 살고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기 위하여 선택하고 살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 길이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하기에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것들이어서 놀랍기만 합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25,40) 사랑은 복잡한 기교나 현란한 이론이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진실입니다. 여기 내 삶 속에 주어진 현실이 사랑의 터전이며,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질문 곧, ‘가장 중요한 때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랑만이 사랑을 낳듯이 우리가 사랑하기로 마음먹을 때마다 사랑해야 할 일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가장 작은 이들을 위해 세상에 오신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며,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입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모든 민족을 가를 것이다.” (25,31.32 참조)고 분명히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셨으며, 이에 걸맞은 삶을 살도록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니 늘 깨어 살면서 그날과 그 시간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래전에 어느 수녀가 보낸 「기도」라는 글을 여러분들과 나누면서,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 되게 하소서. 지금까지 해왔던 내 사랑에 티끌이 있었다면 용서하시고 앞으로 맑게 흐르는 강물이 되게 하소서. 위선보다 진실을 위해 지혜로운 진실 주시고 넓은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쓰러지는 육체로 살지 라도 악 앞에 강해지는 내가 되게 하소서. 크신 님이여 그리 살게 하소서. 철저한 고독으로 살지 라도 사랑 앞에 낮아지고 깨어져도 겸허한 내가 되게 하소서.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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