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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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들은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타인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면서도,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상태를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타인에 대한 시선은 좁은 시야視野로, 그것도 보여지는 것만을 편견과 선입견의 시선으로 그릇되게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염기원은「인생 마치 비트코인」이란 책에서 “상식에서 벗어난 판단을 하는 사람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 몸이 가난한 사람도 열심히 노력하면 가난을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신이 가난한 사람은 그나마 가진 것도 모두 잃는다. 가난의 법칙이다. 실패를 통해 배운 게 없는 사람, 자신의 힘으로 좌절을 극복한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합니다. 부정적이고 왜곡된 시선은 참된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형성된 것이며, 이는 결국 자기 과거 상처의 어둠과 의존적 약함에서 기인한 결과물입니다. 그러기에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자신이 가진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모든 것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갇힌 채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16,23)고 말씀하셨을 때, 이 사탄은 자기 바깥에 있는 어떤 그 무엇이 아니라 항상 타인보다 앞에 나서고 드러내기를 원하는 자아,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양 가식과 허세로 넘쳐 나는 거짓된 자아라는 사탄입니다. 이게 우리의 내면의 상태이고, 그 결과가 바로 현실 속에 드러난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입니다. 

오늘 복음엔 직접적으로 바리사이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란 거울을 통해서 바라사이들의 시선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타인을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바라보는 바리사이들을 뒤에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바리사이들이 겉으론 ‘거룩함과 깨끗함’이란 시선을 가지고 타인 곧, 예수님을 포함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바리사이들을 뒤에서 예수님께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결국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자신들의 뒷모습이 확연하게 보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어떤 시선으로 군중들과 특히 예수님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말입니다. 죄인들과 함께 먹기도 하고 어울리는 예수님, 안식일 법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 자신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을 위선자라고 질타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바리사이들의 시선, 곧 마음의 태도는 처음부터 비딱했고 오그라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동에서 여차하면 빌미 거리를 잡을 의도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예수님을 향한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에서 이미 그들의 내적 태도가 드러났던 것입니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이런 왜곡되고 오그라든 마음의 소유자들이 예수님 당대의 지도층이었고 그로 인한 피해는 모두 다 민중들이 당해야 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이 바로 군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9,36)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전 남미를 두 차례 여행하면서 들었던 많은 사람의 자조적인 표현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땅, 남아메리카에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딱 한 가지 주시지 않은 것이 바로 올바른 정치가이다.』라고 말하더군요. 예전에 비해 남미 상황은 훨씬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도 그에 못지않다고 봅니다. 정치계나 종교계나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변화와 발전은 요원합니다. 천주교나 개신교에서 일꾼, 사제와 목사들의 숫자는 분명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성직자들이 많아져서 더 좋아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 내 사정으로 미루어 볼 때 일꾼의 숫자 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군중을 가엾이 여기는 목자입니다. 군중의 ‘기를 꺾지 않고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순수하고 올곧은 마음을 가진 성직자, 자신이 한 말을 실행하는 참된 하느님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일꾼의 수효가 적거나 없어서 지금 세상이 하느님의 밀밭과 포도밭에서 수확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 안에 제대로 된 일꾼들이 많지 않기에 예수님께서 더 마음 안타까우리라 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고 추궁당하는 성직자가, 바로 제가 아닌지 타인을 바라보는 저 자신을 거울이신 예수님을 통해 바라봅니다.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기가 꺾여 풀이 죽은 듯 보이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9,37~38) 예수님께서 언급한 ‘수확할 일꾼’이란 처음부터 씨를 뿌리고 모를 내는 일꾼이 아니라 이미 주님께서 농사지어 놓은 것을 수확할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확할 일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일꾼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사람을 살리는 일 곧 구원 활동입니다. 예수님은 강생과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요19, 30)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루신 인류 구원사업을 계승할 일꾼들이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완성해 놓으신 인류 구원사업을 계속할 열두 사도들을 뽑으셔서 삶을 통해 가르치시고 파견하실 겁니다. 그런데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 14)고 말씀하신 것은, 분명 일꾼으로 선발된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작 그들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수확을 거두어들이려고 했지, 예수님 방식대로 수확을 거두어들이려는 일꾼이 적었고 적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였지만, 정말 믿을만할 예수님의 일꾼은 많지 않았고, 많지 않습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찾으시는 추수할 일꾼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먼저 홀로 아버지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시고, 자신이 해야 할 일 곧 아버지의 뜻을 지속해서 실천할 사도들을 하나하나 이름 불러 뽑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뽑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을 뽑으셨습니다. (요15,16 참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3,14-15)는 점입니다. 즉 복음 선포자가 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점은 바로 스승이신 예수님과 몸과 마음이 함께 머물면서 삶을 통한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교육은 이념적 교육이 아니라 스승이신 주님과 함께 삶을 통해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터득되고 내면화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측은한 마음으로 더러운 영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처럼 목자 없는 양들을 가엾이 여기며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하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함께, 곁에서 지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의 심영心靈으로 충만할 때, 수확할 힘을 길러내고, 수확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그분의 언행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그분의 마음을 닮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열두 제자의 명단을 봅니다. 여기서 특징적인 점은 이들 대부분이 혈연이나 지연 그리고 학연의 측면에서 볼 때, 사회적 약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계승할 협력자가 필요하셨는데 그 선택된 제자들은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정말 하찮은 사람,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소명받고 선택받은 것은 우리 역시도 제자들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분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1코린 1, 26. 29) 예수님의 선택기준은 그들이 선택받기 이전의 출신 성분, 교육 정도, 성격, 직업의 현재 상태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래에 ‘그 무엇이 될 가능성’을 꿰뚫어 보시고 또한 하느님의 은총에 얼마나 순응하고 조화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를 보고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라 봅니다. 그러므로 제자로 선발된 이들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에 의존하고, 사랑에 의탁하며 살아갈 단순하고 순박한 믿음을 지닌 하느님의 어린아이와 같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 하느님의 어린아이가 되려고 노력했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셨음을 자각하고, ‘우리 역시도’ 선택받을 수 있음을 다짐하면서 용기를, 희망을 간직하고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이 주간을 살아갑시다. “언제나 주님 얼굴을 찾고 그 얼굴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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