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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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그리스도교 역사만큼 교회 안에는 수많은 성인 성녀들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성인이 누구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저는 감히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이 사셨던 성인은 소화 데레사 성녀라고 봅니다. 오늘 이 세상을 볼 때 이젠 하느님의 철부지와 같은 신앙인은 마치 미성숙한 신앙인처럼 취급당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시대가 필요한 성인은 바로 성녀 소화 데레사와 같은 분이며, 소화 데레사 성녀와 같은 믿음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전적으로 신뢰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하느님 앞에 작은 자의 삶과 사랑의 성소를 살려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에 전적인 신뢰와 의탁으로 사셨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살아야 할 하느님의 지혜이며 하느님의 뜻입니다. 지적인 앎으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앎, 사랑의 앎에서 오는 지혜만이 하느님의 신비를 꿰뚫을 수 있고, 사랑으로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나라의 신비가 지식적인 면에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에게 드러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에게 드러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어제 복음에서 ‘불행하다.’는 예수님 말씀의 반향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코라진, 베싸이다 그리고 가파르나움은 랍비들의 종교 교육이 가장 성행하던 종교 도시였으며, 어느 지역 사람들보다 ‘하느님에 관한 지식’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지적인 앎으로 말미암아, 곧 ‘아는 것이 병이다.’는 말처럼 자기도취와 오만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들은 눈을 감고 생명의 빛을 보지 않았고, 귀를 틀어막고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늘 말씀(=기도)은 스스로 율법을 연구하고 지키려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의 자기 교만과 오만에서 눈과 귀를 막아버려서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어쩌면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는 굳은 마음을 보시고 마음 아프게 하신 기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대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과 그 의로움이 예수님을 통하여 실현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11, 27)고 단호하게 선포하셨다고 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다른 복음에서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14,6)고 언급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 볼 때, 아들 외에는 아버지를 보여 줄 사람이 없고,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고 알 수 없기에 모든 사람은 반드시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야만 아버지 하느님께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의 지혜로움과 슬기로움이 죄는 아닙니다. 많이 배우고 아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 지식과 지혜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아주 필요한 자질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이 듣고 배운 것이, 흘러넘쳐 버려 오히려 부족한 것보다 더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든지 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로써 지나친 지식 과잉(=하느님에 관한)이 오히려 하느님을 살지 못해 영혼이 말라비틀어지기도 합니다. 그것들이(=지식 과잉) 하느님보다 우선하다 보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가리게 됩니다. 하느님보다 다른 것을 더 우위에 둘 때,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경험과 지식, 능력, 명예 등이 우선 할 때 하느님은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에 비해 철부지 어린이는 받아드릴 수 있는 여백이, 공간이 충분합니다. 어린이는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해도 자신이 작고 미약하기에 부모에게 의지하고, 의탁하며 온전히 신뢰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어린이와 같은 그 순진하고 단순한 영혼을 지닌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신비가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하고, 얼마나 많이 배우고,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반대로 많이 배우지 못하고, 많이 가지지 못한 것들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든지 자신의 지금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하느님 앞에서 서고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내가 살아온 삶의 자세나 그것이 전부라고 믿어왔던 것이,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살아감에 있어서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하게 떨쳐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힘써 노력해서 배운 지혜이고, 터득한 슬기라고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면 기꺼이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시기를 간청하면서 다만 예수님의 삶의 자세와 태도를 본받아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에 온전히 신뢰하며 의탁하는 삶을 살도록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슬람 수피즘에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어느 날 스승이 말하기를 “만일 그대가 참으로 성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너의 성격을 어린이와 같은 성격으로 바꾸어야 한다.” 고 하자 제자가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스승이 대답하기를 “어린아이들에게는 5가지 특성이 있다.” 고 대답하였는데; “첫째. 어린아이는 매일의 양식에 관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둘째 어린아이는 병이 들었을 때, 그들의 불행에 관해서 밤낮으로 불평하지 않는다. 셋째 어린아이는 무슨 음식을 가졌든, 그들은 그것을 나눈다. 넷째 어린아이는 하찮은 위협에도 놀라고 이내 눈물을 흘린다. 다섯째 어린아이는 싸우거나 다투었을 때, 그들은 마음속에 원한을 품지 않고 이내 잊어버린다.” 어린아이는 머리가 아니라, 온 존재로 느끼고 산다는 것이며 이것이 생명과 사랑과 연결되고 결합된 상태입니다. 이런 삶이 참된 신앙인의 태도이며 삶입니다. 온 존재로 온 마음으로 하느님께 집중하고, 하느님께 의탁하고 신뢰하는 존재만이 하느님과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 살아갑니다. 사도 바오로의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로8,13)라는 권고를 마음에 새기면서,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하느님의 철부지 어린아이가 되는 길입니다. “주님 당신 앞에 늘 철부지 어린아이가 되게 하여 주시고, 당신의 사랑과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며 살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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