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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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래된 영화(1967년 발표)이지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란 영화를 보신 분 계시겠지요. 평범하고 쾌활한 백인 처녀 조이는 여행 중에 만난 존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존은 장래가 촉망되는 유능한 젊은 의사이지만 전처와 아이가 사고로 죽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그가 흑인이라는 점입니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조이의 부모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결혼한답시고 데리고 온 존을 보고 기겁합니다. 그런 갈등 속에 저녁 식사에 존의 부모도 초대받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결혼하겠다는 며느리가 백인 처녀임을 안 존의 부모 반응도 조이의 부모와 마찬가지입니다. 대화를 통해 결혼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하고자 고심한 끝에 결혼하느냐 마느냐는 결정은 두 사람의 사랑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를 통해 이들은 모두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시작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영화 제목처럼 애당초 초대받지 않은 손님과 같았지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초대받은 손님이 된 것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자발적인 응답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진정 초대받은 손님으로써 혼인 잔치에 적당한 예복을 입고 있나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잔치에다 비유하신 것은 하느님이 거저 베푸시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잔치는 베푸는 사람이 있어야 잔치는 열립니다. 귀중한 분이 베푸신 잔치에 초대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고,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 요즘도 청와대에서, 아니 이젠 용산에서 사람들을 초대하겠지요. 초대받은 사람은 가문의 영광이라 생각하고 떠나올 때 선물로 준 대통령 휘장이 새겨진 시계 등등을 자랑하잖아요. )

그런데 복음에 보면, 처음 초대받은 사람들은 혼인 잔치에 초대받았음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들은 오지 않았지요? 초청을 받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자기 밭으로 일하러 갔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갔고,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심부름하러 온 종들을 잡아 때리기도 하고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2,5참조) 처음 초대받은 사람들은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했지요. 그들은 혼인 잔치에 초대받음에 감사하고 감격하기보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하찮은 일로 생각하여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하느님의 일보다는 자신들의 일상사가 더 우선이었고, 하느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더 많은 흥미와 무게를 두고 있었기에 천상적인 일에 등한시했던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부류는 더 심하게 초대를 귀찮게 여기거나 불쾌하게 생각했으며, 심지어 적대감에서 초대하러 부르러 온 일꾼을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양심을 속이며 신앙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상적인 생활과 삶에 충실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일 때문에 영적인 일이 무시당하거나, ‘최선’이 아닌 ‘차선’이 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충실함 때문에 영적인 일을 등한히 하거나, 신앙이 내 삶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차선이 되어버린다면 신앙생활은 형식적인 차원에 머물거나, 취미 활동에 머물게 되고 주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능력을 주시는 하느님으로 힘입어’ 무슨 일이든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충실히 자기 일에 몰두할 것입니다. ‘한량없이 풍요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첫 부류는 소수의 특정 대상을 초대했다면 두 번째로 초대된 부류는 불특정 다수인 점이 차이가 있습니다. 신분 여하, 선인과 악인 등 구분하지 않고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초대받았고, 초대받은 모든 사람은 여하튼 그 잔치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된 예복을 입고 입장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 중에서 유독 한 사람만이 혼인 잔치에 적합한 예복을 입고 있지 않아 내어 쫓김을 당했다고 합니다.(22,11참조) 물론 성서는 “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22,12)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말문이 막혀 버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의문은 ‘왜 그 사람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참석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 사람에게 맞는 옷이 없었거나, 게을렀거나, 아니면 그 옷이 싫어서 입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문제는 잔치에 걸맞은 옷을 갈아입고 잔치에 참석한다는 것은 초대받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초대한 임금에 대한 마지막 예의의 표시라고 봅니다. 자기 자신 좋을 대로 혹 마음 대로가 아니라 초대한 임금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라고나 할까요!! ‘재미있는 것은 가수 ’이효리‘가 예전 결혼식장에 가죽으로 된 치마를 입고 참석해서 입방아에 올림 당했다고 하더군요. 예복이란 무엇을 상징하며, 왜 그토록 예복이 중요할까요? 예복이란 단지 외적인 옷이 아닌 신분이나 역할을 표시하기에 장소나 모임의 성격에 맞추어 옷을 입어야 하며, 예복은 때론 그 사람의 의식과 마음 상태를 상징한다고 봅니다. 성 아오스딩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거짓된 사랑을 지닌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초대하신 분에 대한 사랑을 감사하기보다 마지못해 거짓된 사랑으로 응답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 우리는 어떻게 하지요!!! 가장 예쁜 옷으로.

여기서 예복은 하느님께서 입혀 주시는 ‘구원의 빛나는 옷’ (이 61,10)이며,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선포하신 ‘회개와 믿음’ (로 10,9-10)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예복을 입은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구원은 곧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 은총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구원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며, 이를 위해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참된 신앙인이며 회개의 삶을 사는 사람임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 덧붙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22.14)라고 결말짓습니다. 임금이 처음에 손님들을 초대했지만, 초대받은 대다수 사람은 거절하여 잔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이 임금의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무관심했으며 심지어 적개심과 함께 경멸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길 원한다면 자기를 버리고 주님의 초청에 응하는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낡은 옷을 버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새 예복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 예복은 은혜로운 이 땅에서부터 갈아입어야 잘 맞게 되고 어울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복음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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