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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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신자 분이 뜬금없이 “신부님, 십자가 위에 붙어 있는 저 글자, 곧 'I.N.R.I'가 무슨 뜻입니까?”라고 제게 질문하더라고요. I.N.R.I는 라틴어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약자로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뜻입니다. 연중 마지막 주일인 오늘을, 교회가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지내는 그 배경과 이유를 생각하면서 오늘 대축일을 뜻깊게 지내도록 합시다. 

오늘 축일을 정확히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오늘 축일은 1925년 교황 비오 11세께서 회칙 ‘과스 프리마스 Quas primas’를 통하여 제정하였습니다. 1925년은 325년 가톨릭교회의 첫 공의회에서 니케아 신경을 선포한 1,600주년의 해였습니다. 교황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무참하게 파괴된 참담한 세상을 니케아 신경을 바탕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했습니다. 교황은 우주와 세상의 참된 자유와 평화, 그리고 안정된 질서란 오직 그리스도를 ‘왕 중의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절대적인 통치권 아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선포하려 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통치권을 현세적으로만 생각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본디 그리스도왕 대축일은 10월 마지막 주일에 지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1969년부터 오늘과 같이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에 기념함으로써 우주 만물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길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중개자이심을 고백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성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라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삶은 단 한 사람의 행복과 풍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기를 두고 세상 종말이 오는 그날까지 모든 사람에게 미칠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분은 온 세상 사람들의 참된 사랑의 왕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금으로 자처하신 적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금이 되고 싶어 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금 대접을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일어납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임금으로 자처하신 적이 분명히 없습니다. 빌라도가 집요하게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마태27,11/요18,33)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비켜 가시고,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18,36)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임금이 되고 싶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 이후, 사람들이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습니다.”(요6,15) 물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실 때는 군중들이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이스라엘 임금님은 복되시어라.”(요12,13)고 환영받으셨지만 이내 돌변한 군중들의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요19,15)라고 온갖 조롱과 모욕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는 뜻은 우리의 주님께서 임금이 되길 원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조롱받으신 주님을 우리가 임금으로 받들겠다는 뜻이고 우리는 그분의 충성스런 신하가 되고 백성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세상의 대통령들처럼 고작 역사책의 한 줄로 기억되는 이 세상의 임금이 되고자 하셨겠습니까? 그런 임금이시라면 저는 그분의 백성이 되지 않으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왕으로 모시고 고백하는 예수님은 힘과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임금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왕으로 모시고 고백하는 예수님은 오히려 저희를 모든 짓눌리고 묶인 상태에서 해방 시켜 주시고 자유롭게 구원해 주신 임금이십니다. 그래서 백성인 우리도 그분처럼 여러 삶의 상황에서 짓눌리거나 억눌린 이들을 자유롭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우리가 왕으로 모시고 고백하는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어떤 얘기도 듣지 않는 그런 일방통행의 임금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왕으로 고백하는 예수님은 우리의 간절한 외침과 아픈 소리를 즐겨 들으시고, 백성을 아끼고 돌보시는 임금님이십니다. 그래서 백성인 우리도 즐겨 이웃의 하소연을 듣고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기도를 통해서 임금님께 아룁니다. 우리가 왕으로 모시고 고백하는 예수님은 자기 배 채우려고 백성의 등골을 빼먹는 임금이 아닙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세상살이에 지치고 고달픈 우리에게 차고 넘치는 상床을 차려주시고 무엇보다 말씀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백성인인 우리도 굶주리는 이들의 일용할 양식을 같이 걱정하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따듯한 위로를 건넵니다. 우리가 왕으로 모시고 고백하는 예수님은 빈부 차이, 성과 인종 차별, 종교와 이념의 갈등으로 불목과 불화를 조장하고 분열시켜 우리를 사지로 몰아넣는 임금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공평과 정의로 평화롭게 하시고 사랑과 용서로 사람들을 하나로 일치시키려 하신 생명이신 임금이십니다. 그래서 백성인 우리도 세상이 평화롭도록 평화의 사도가 되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사랑과 생명의 왕으로 인정하고 고백한 우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최초로 구원의 확답을 받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23,43) 이로써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은 이미 이 지상에서부터 천국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낙원을 자신들만의 이기적인 낙원으로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바쳐 세상 모든 사람과 공유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간,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는 오늘, 우리의 왕이신 주님을 어떻게 따라왔고 따를 것인지 생각하면서, ‘하한주 신부’의 시에 ‘신상옥’이 작곡한「임 쓰신 가시관」을 마음으로 노래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시다. 『임은 전 생애가 마냥 슬펐기에 임 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살으리라. 임은 전 생애가 마냥 슬펐기에 임 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살으리라. 이 뒷날 임이 보시고 날 닮았다 하소서. 이 뒷날 나를 보시고 임 닮았다 하소서. 이 세상 다 할 때까지 당신만 따르리라.』


오래전에 어느 수녀가 보낸 「기도」라는 글을 여러분들과 나누면서,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 되게 하소서. 지금까지 해왔던 내 사랑에 티끌이 있었다면 용서하시고 앞으로 맑게 흐르는 강물이 되게 하소서. 위선보다 진실을 위해 지혜로운 진실 주시고 넒은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쓰러지는 육체로 살지라도 악 앞에 강해지는 내가 되게 하소서. 크신 님이여 그리 살게 하소서. 철저한 고독으로 살지라도 사랑 앞에 낮아지고 깨어져도 겸허한 내가 되게 하소서.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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