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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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은 「타는 목마름」에서『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하나 타는 가슴속 목마름에 기억이 내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작금의 현실이 그렇지만 어찌 타는 목마름이 민주주의만이겠는가? 인생이란 멀고도 험한 길을 가다 보면 자주 목마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인정과 관심, 환대와 보살핌의 목마름)에 직면하게 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신앙의 여정 곧 내적 여정엔 더더욱 영혼의 타는 목마름(=사랑과 생명을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을 느끼고 느껴야만 합니다. 목마름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목마름의 절박함으로 울부짖다 보면, 마침내 목마름은 해갈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독서의 이스라엘 백성, 특별히 복음의 사마리아 여인은 인생과 신앙의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의 어제와 내일을 보여주는 안내인이며 길잡이입니다. 
    
제 1독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볼멘소리와 울부짖음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도달하기 이전에, 사막 횡단 여정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겪어야 할 일이라고 보입니다. 오랫동안 핍박과 착취 속에서 살아 온 그들에게는 분명 이집트와 그 종살이에서 벗어난 감동과 감격 후, 밀어닥친 여러 어려움을 잘 참고 견디어 왔지만, 사막이란 혹독한 상황 앞에서 그들은 차츰차츰 주어진 막막한 현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불평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사막에서 목마름은 생명과 직결되는 고통이었기에 그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17,3)라며 모세에게 불평을 터트립니다. 우리 역시도 이런 상황이었다면 그들처럼 지도자에게 항변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고 모세 역시 별다른 묘안이 없었기에 하느님께 나아가 백성의 소리를 전달하며 부르짖자, 하느님께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17,6)고 응답하십니다. 일부러 하느님을 시험할 수는 없겠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절체절명의 다급한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순간, 진정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나 할까 싶고, 그런 순간 하느님을 향하여 울부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간절한 울부짖음의 순간이 바로 영적 목마름의 순간이며 이런 목마름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영적 투쟁은 치열하고 심각해지겠지만 바로 이 순간이 바로 하느님을 향한 내적 정화와 단련의 시간입니다. 이런 절박함을 통한 깊은 내성內省의 깨달음은 우리의 ‘발가벗겨진 순수한 신앙과 화장이 지워진 민낯’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게 합니다. ‘마싸와 므리바’의 본뜻은 <시험과 다툼>이고, 마싸와 므리바는 장소 이전에 바로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숨겨진 영적 상태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항상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17,7참조) 이런 하느님을 시험하려는 내적 투쟁을 겪을 때 진정으로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만나고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의 <있음>과 <하심>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고, 아버지의 일을 완수하시기에‘(4,34참조) 사마리아의 시카르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지치시고 시장하셨기에 우물가에 앉아 계셨는데 그곳으로 아빠 하느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다섯 명의 남자들과 더불어 살아왔기에 타인과 의미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늘 이웃의 시선을 피해 살아왔기에 아무도 오지 않을 그 시간에 그곳에 이미 와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예수님을 기다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느 때든지 그분이 우리에 앞서 그 시간 그 자리에 먼저 와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4,7)라고 청하였지만, 그 여인의 눈에는 자신이 타인에게 항상 차별을 받아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목마른 한 존재로 보여 지지 않고 ‘종교와 인종 그리고 성性 차별’의 덫에 빠져 주님의 청을 거절합니다. 우리 역시도 삶을 살아오면서 누군가가 우리의 인정과 사랑과 관심이 필요할 때 그들의 절박한 간청을 여러 이유를 들어 거절하지 않았는가를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반성해야 합니다. 그 여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깊은 내면에 있는 사랑에 대한 갈증과 생명에 대한 목마름을 꿰뚫어 보시고 또한 아버지께서 이 여인을 당신에게 이끄신 뜻을 깨달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4,14)라는 말씀을 통해 당신이 지금 그 여인 앞에 있어야 할 이유를, 그리고 ‘나에게 물을 좀 다오.’라고 한 까닭을 밝히십니다. 그녀의 처지는 바로 지금 우리의 처지이고 그녀는 바로 되어야 할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4,15)

닫히고 부서진 마음으로 살아 온 그 여인이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그녀의 마음에 부어지기”(로5,5참조) 시작하자 영원한 생명을 채워주신 하느님께 대한 예배 장소를 질문하는데 이 또한 우리를 대신한 절대적이고 궁극적으로 필요한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명쾌하게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그때에는 모든 사람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것이다.”(4,21~23)고 언약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영”(4,24)이시기에, 영이시고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아빠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사람은 누구나 외부의 어떤 장소나 곳이 아닌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미 그 영혼 안에 내주하시고 내재하시기에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아빠 하느님께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에”(로5,5) 영과 진리 안에서 참된 예배를 어디서든지 어느 때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똑같은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나길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난 일은 우연도 필연도 아닌 오직 사랑의 사건, 곧 은총의 사건이며 이를 체험한 사마리아 여인이 단지 예수님을 ‘선생님에서 그리스도’로 호칭이 변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알린 최초의 복음 선포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만난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들으면서 체험한 그 사랑과 생명을 함께 나누도록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고 그들을 그리스도께 이끌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은 바로 아빠 하느님의 계획이었고 예수님은 그런 아버지의 뜻 곧 사마리아 여인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면서 사랑과 생명에 목마른 모든 이를 다 당신께 이끌도록 우리를 구원의 선포자로 부르시고 있습니다. 오늘 사순 제3주일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마음에 간직할 은총을 청하면서 감사송을 들어봅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하시면서, 이미 그 여인에게 친히 신앙의 선물을 주셨으며, 또한 거룩한 사랑의 불을 놓으시려고, 그 여인에게 신앙의 갈증을 느끼게 하셨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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