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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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가 무엇일까요? 저의 관점은 씨뿌리는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고, 씨가 아무리 좋아도 수확을 결정짓는 것은 씨가 떨어진 토양의 상태라고 봅니다. 비유에서 드러난 것처럼, 어떤 씨는 딱딱하게 굳어진 영혼처럼 길바닥에, 깨달음이 깊지 않은 영혼처럼 돌밭에, 산만한 영혼처럼 가시덤불에, 그리고 겸손한 영혼처럼 좋은 땅에 떨어지느냐에 따라서 수확의 결과가 다르게 드러납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30배, 60배 그리고 100배의 결실을 거두었다고 하는데, 우리의 인생이 이런 결실맺는 인생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저의 관심은 이런 축복받은 놀라운 삶의 결과 보다는 이런 결과가 가능한 토양이 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과 삶의 토양을 어떻게 가꾸어 나가느냐에 있습니다. 

결실을 거두기 위해 여러 준비 과정, 무엇보다 먼저 땅을 깊이 갈아엎은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1992년 청주 척산리 수련원에 살 때의 제 경험에 의하면, 묵혀둔 밭일수록 새로운 밭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일이 더 많고 힘들더군요. 아무튼 묵힌 밭은 깊이 갈아엎어야 하고, 흙덩어리를 부수어야 하고, 돌멩이도 제거하고 잡초도 일일이 뽑아내야 합니다. 또한 씨앗이 잘 자라도록 여러 가지 것들, 곧 자기 방식대로 찢기고 죽은 퇴비가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야 비로써 좋은 땅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풍요로운 결실을 원하면서도 이런 거친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풍성한 수확을 일구기 위해 영양분을 보태야 하는 준비기간이 필요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거름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분해된 유기물을 흔히 부식토(humus)라고 하는데, 겸손(humility)이라는 단어의 어원입니다. 이 부식토는 특히 색깔이 짙고 영양분과 유기질이 많은 흙, 곧 좋은 땅입니다. 봄에 정성들여 심은 아주 작은 씨앗이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이룬다는 것은 자명한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양질의 토양인 부식토와 함께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 충분한 흙, 부식토가 있다면 우리 영혼에 심어진 생명의 씨앗은 자라고 성장하며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풍요롭게 아름답게 편안하게 해 줄 만큼 영적 큰 나무가 되리라 봅니다. 겸손은 성장을 낳고, 성장은 좋은 결실을 거둡니다. 

또한 제 삶의 경험으로, 하느님의 말씀인 씨앗이 좋은 땅(=마음의 밭/영혼)에 떨어진다고 해도 싹을 틔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수분(=성령)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수분이 씨앗에 하는 일은 성령께서 하느님의 말씀에 하시는 일과 같습니다. 수분과 씨앗이 인간의 마음에 함께 찾아올 때 비로소 생명의 기적, 수확의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그 씨가 내 안에서 발아하여 충만한 그리스도의 나무나 열매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밭에 떨어진 모든 말씀은 성령이 생명의 수분을 주시지 않은 한 땅속에서 동면의 나날을 보낼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이55,10)는 말씀이 새삼스럽게 오늘 저의 마음에 요동을 칩니다. 우리가 우리 영혼의 밭을 찰진 부식토(=겸손)로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성령의 활동(=수분)이 활발하게 우리의 부식토와 더불어 작용할 때 생명의 씨앗은 자라고 성장해서 새가 머물 만큼 큰 나무가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 

저는 세상 살아오면서 고신 극기를 잘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많이 만났습니다. 저 또한 고신 극기를 썩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참으로 겸손한 사람을 만나기가 여간 쉽지 않고 만나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겸손한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은총을 베푸신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4,6) 겸손한 사람이 성공한 삶을 이룬다고 할 때 <겸손>과 <성공>은 서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겸손>과 <성공>이란 단어의 어원학적 뿌리 역시 흙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공success>은 <뚫고 나오다.>는 의미의 라틴어 <succedere>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단어의 중간 부분인 cede는 씨앗seed의 어원입니다. 결국 씨앗이 비옥한 땅, humus를 뚫고 햇빛 속으로 나올 때 그것은 성공의 길을 따르는 것이며, 뚫고 나오는 것이 곧 성공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겸손에 기반하고 뿌리를 둠으로써 성공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성공(=좋은 결과, 좋은 결실) 없이는 진정한 겸손이 없고, 겸손 없이는 진정한 성공이 없음을 기억하면서 성공한 삶, 결실맺는 삶을 위해 겸손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기도를 대신해서 모턴 켈시라는 분이 쓴 책, 「기도와 레드우드 씨앗」에서 발아에 관한 부분을 인용합니다. 『발아란 이상한 과정입니다. 죽음과 생명이 공존합니다. 새해처럼 묵은 것은 가고 새것이 됩니다. 정적으로 완벽하던 씨앗이 균형이 깨지며 훼손을 입습니다. 껍질 새로 물이 스며들면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불모의 애리조나에 긴 겨울 우기가 지나면 대지가 갑자기 깨어 살아나 사막은 꽃밭이 됩니다. 몇 년씩 잠자던 씨앗들이 깨어 살아나 광활한 산비탈에 자줏빛 융단을 깔고 산자락에 울긋불긋 색을 입힙니다. 건조한 이집트 무덤에서 발굴된 곡식 낱알이 습한 토양에 심기자 부풀어 싹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중략) 씨앗의 밀폐된 관점에서 볼 때 발아란 유쾌한 과정이 아닙니다. 물이 껍질을 뚫고 들어가 속을 들쑤셔 놓습니다. 생명의 싹이 잠에서 깨어나 부풀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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