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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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들은 긴 복음 말씀에서, 마태오는 유대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밝혀주시면서, 제자들이 문자가 아니라 그 정신에 순종하고 살아갈 때 율법은 완성된다고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율법을 삶에 적용해야 하는지 실례를 들어 말씀해 주는 여섯 가지는 모두 인간의 내적 태도와 동기를 들여다보라는 초대인데, 무엇보다도 화해를 위해 일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십계명 중 제5계명(=살인해서는 안 된다)과 제6계명(=간음해서는 안 된다), 제8계명(=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계명을 다 잘 지켜야 하지만 그중에서 제8계명을 묵상해 봅시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5,33)는 계명은 말로써 이웃을 해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말로써 이웃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나라 왕이 신하 두 명을 불러 서로 정반대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한 신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을, 또 다른 신하에게는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임무를 맡은 신하들은 온 세상을 두루 돌아본 후에 답을 찾아왔는데 똑같은 답이었습니다. 둘 다 사람의 '혀'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왕은 두 신하의 열띤 논쟁을 들어본 후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도 혀요, 가장 악한 것도 '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이 예화는 인간의 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선한 사람도 될 수 있고, 악한 사람도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 치밖에 되지 않는 혀는 온몸을 다스릴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갖고 있어서, 혀를 통해 만들어 내는 말 한마디는 행복과 불행의 열쇠가 될 정도입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큰 영향을 주듯이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혀를 삼가라고 권하면서, 아무리 신심이 깊다고 한들 “제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아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 사람의 신심은 헛된 것입니다.”(1, 26)라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혀로, 말로 이웃을 해치는 것은 살인 보다 더 큰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이지만, 험담은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해칠 수 있습니다. 험담하는 자신을 해치고, 험담하는 말을 듣고 동조하는 사람을 해치고, 그 험담의 대상자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혀를 조심하지 않고 함부로 말해서 이웃을 해치는 사람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고 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건을 훔친 죄는 훔친 물건을 되돌려주면 보속이 되지만, 말로써 끼친 피해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한번 뱉은 말은 쏜 화살이요, 엎질러진 물이므로 주워 담을 수 없고 기워 갚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을 해치려는 악의가 없이 무심코 한 말이라도, 지나가는 말로 그냥 한 말이라도, 심지어 도와주려고 한 말이라도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지나가던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말로써 상대를 해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오늘 복음에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을 잘 지키려면, 이웃에게 해로운 말을 하지 말고 이로운 말을 하도록 합시다. 

성경을 보면 <거짓>과 <맹세>는 어떤 것의 속과 겉처럼 묶어서 하나로 언급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거짓과 맹세에 대해 구별하여 살펴볼까 합니다. <거짓)>은 사실과 다른 것이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거나, 사실처럼 꾸미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거짓은 '하느님보다 자신을 더 높게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을 뜻합니다. (시 59, 12~13) 또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속여서 예언하는 사람들도 거짓을 말하는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레 29, 9) 신약에서도 거짓은 구원의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며 사탄에 속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요한은 악마를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이고 살인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8, 44)

그러나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그리고 신약에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때에 산파 시프리와 푸아 그리고 또한 창녀 라합 역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거짓말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죽을까 봐 두려워서 거짓말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경우, 산파 시프리와 푸아 그리고 라합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 야곱처럼 자기 유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경우,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람을 속이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제 소견으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악한 요소가 없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같은 경우와 산파 시프리와 푸아 그리고 기생 라합의 경우처럼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경우에는 이해될 수 있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은 시프리와 푸아처럼 언제나 하느님이어야 합니다. 자기 기준에 따른 것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며, 거짓으로 남을 깎아내리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거나, 거짓말로 증언하고, 거짓 맹세하는 것은 모두 삼가야 합니다.

맹세는 고대 근동 사회에서 약속을 보증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당시 맹세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증인으로 하거나 특별한 상벌 조항, 특히 '맹세를 어기는 경우에는 저주를 받아도 좋다'는 규정을 정하여 맹세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맹세‘가 하느님 앞에서 약속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맹세의 엄중함과 신성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맹세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출20:16, 신5:11) 여러 가지 이유에서 예수님 역시 맹세의 오용을 막기 위해 맹세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더욱이 말할 때, “예”와 “아니요”를 분명히 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율법에서 가르치는 바에 대해 조건을 붙이지 말고, “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5,37)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삶의 문제는 ’예‘와 ’아니오‘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라고 해야 할 때 ’예‘라고 하지 못하고, ’아니오‘라고 해야 할 때 ’아니오‘라고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라고 해야 할 때 ‘예’라고 말하고 ‘아니오’라고 해야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순교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느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려고 죽은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 는, 이 한마디 말 만하면, 그 무서운 처형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는데도 하느님과의 맹세를 지키려고 죽어간 사람들이 순교자입니다. 로마의 통치자는 로마의 주교 풀리카리포 성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면 자유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86년 동안 그분의 종으로 살아왔지만, 그분은 나에게 결코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는가?』라고 하며 죽어갔습니다. 예수님 이름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 복음을 전하다 죽어간 사람들, 순교자들, 그들은 ‘거짓 맹세’를 하지 않으려고, 맹세한 것을 지키려고 죽은 사람들입니다. 맹세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하느님께 참으로 예배를 드리며 사는 사람은 거짓을 버리고 맹세한 바를 신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거짓말하는 혀’와 ‘거짓말을 퍼뜨리는 거짓증인을’ 미워하신다고 했습니다.(잠6:16~19)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앞에, 사람 앞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진실한 사람, 정직한 사람, 약속을 지키는 사람, 맹세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 때 하느님 앞에 맹세한 사람들입니다. 세례 때 우리는 사제와 많은 신자 공동체 앞에서 "이제부터 예수 믿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며 하느님의 말씀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삶을 살겠다는 의미로 “믿습니다! 끊어버립니다!”라고 고백했고 맹세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겠다고 ‘예!’라고 응답한 사람들로 ‘죽음’이 아닌 ‘생명’을 선택하였습니다. 맹세한 바를 끝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 지혜를 청합시다. <주님, 당신 계명의 길을 가르치소서. 저는 끝까지 그 길을 따르오리다.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 가르침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지키오리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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