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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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그리스도인은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태어나고 철이 들면서부터 우리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디로 향하든 우리는 지금도 길을 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이웃을 미워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돈을 좇아, 권력을 좇아, 때로는 비굴하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하며, 꿈이나 환상을 추구하면서 우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쉼 없이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동방의 박사들은 하느님의 뜻과 그 부르심의 상징인 별을 보고 길을 떠납니다. 그들은 길을 가는 우리네 삶의 원형입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을 율법이나 예언서를 몰랐습니다. 그들은 단지 ‘별을 보고’ 온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별을 연구하는 학자들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그 별은 꼭 하늘에 떠 있는 별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별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 마음속에 심어주신, 즉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별입니다. 학문의 궁극적 목적은 ‘진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학자인 그들은 진리에 이르고 싶은 소망과 열망을 가졌기에 진리로 인도하는 별을 인식하고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별이 언제나 찬란히 빛나는 것은 아닙니다. 해가 뜨면 별은 보이지 않듯, 우리가 따르는 별도 때로는 다른 많은 장애물로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박사들도 그랬습니다. 왕이라고 하면 당연히 왕궁에서 살 것이란 생각했기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지로 인해 착오나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갈망을 놓지 않으면, 다시 별은 보이게 마련입니다. 박사들은 이로써 헤로데한테서 더 정확한 정보를 얻고 떠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진리이신 분을 만났습니다. 그 아기는 장차 ‘나는 진리다’고 말씀하실 분이십니다. 참으로 나약한 이 아기를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알아보고 경배할 줄 알았던 동방박사들의 안목을 우리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또 다른 반전은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은 대성전이 있고 학자들과 대사제들이 있고 헤로데가 사는 화려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2, 6)라고 한 것으로 보아, 작고 초라한 고을로 인식되던 곳이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헤로데와 율법 학자 그리고 대사제들은 그들이 안주해 살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춘 화려한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동방박사들은 마치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고향과 친척을 떠났던 것처럼 목표를 향해 어디든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곳이 가장 보잘것없는 곳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욕심과 집착은 별을 보지 못하게도 합니다.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났던 때는, 물론 별이 나타난 때이며 예수께서 나신 때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별을 보고 표징을 읽고 기회를 포착한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마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힌 사람은 적은 것처럼 말입니다. 별은 언제나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보일 때 행동으로 따라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를 찾기 위해 떠날 줄 알아야 하고 떠난 사람만이 동방박사들처럼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할 수 있습니다. (2, 11참조) 이처럼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박사들은 아기를 뵙고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고 나서, 그들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은 올 때와 다른 길입니다. 꿈에 헤로데한테로 돌아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만난 사람의 길은 만나기 이전과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아기를 만나기 전에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헤로데를 만나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 아기’를 발견한 이후, 그들은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박사들은 그들이 가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팔아 그 밭을 산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지시해 주신 길을 따라가면서 그들은 본래의 삶의 현장에서 진리를 찾은 자유로운 영혼처럼 행복한 삶을 살았으리라 믿습니다. 

그 옛날, 그 아름다운 밤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처음으로 보았던 소외되고 미천한 처지의 목동들로부터 오늘 이방인 동방박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개방된 구원의 보편성을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에페 3, 6) 우리 또한 동방박사들과 함께 진리를 찾아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갇혀서 사는 이기심의 따뜻한 온상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죄도, 우리가 받은 상처도 모두 잊어버리고 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런 것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과거를 가지고 우리와 시비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을 향해 길을 떠나면, 별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돌보아줄 때, 하느님은 우리의 별이 되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헤로데나 사제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하느님 없이도 잘 굴러가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도 무방하고 흠집이 잘 드러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이나 그런 삶은 어둠이며 인간성 상실의 삶입니다. 인간 상실의 표본이 바로 헤로데와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라면, 동방박사들은 진리를 향해 행동한 사람들의 표본입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처럼 진리를 향해 움직여야 합니다. 그때 하느님은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 동방박사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 신앙인들이 끊임없이 가져야 할 교훈은 ‘머물러 주저앉은 안주의 삶이 아니라 변화와 떠남의 영성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장이셨던 마르티니 추기경님은 모세의 생애를 묵상하시며 그런 존재를 ‘파스카 인간’으로 규정하였습니다. <파스카 인간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건너가는’ 인간을 말한다. 자신의 삶 속에서, 한 체험에서 다음 체험으로 건너가는 사람이다. 크고 고통스럽고 참으로 인생을 뒤집어엎는 사건들 속에 끼어서 하나에서 다른 경험으로 옮아가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이, 또 자기 겨레가 한 실존에서 다른 실존으로 옮아가고 옮아가게 만드는 사람이다. 모세는 구원의 역사를 산 사람이요, 자기 스스로 하나의 여정을 걸었고 자기 백성에게도 걷게 한 인물이다.> 가끔 신앙의 삶을 산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안타까움은 변화와 전진前進에 대한 두려움과 깨달은 바를 실행하지 못하는 용기와 열정의 부족입니다. 현재의 기도 생활에, 현재의 신앙생활에, 현재의 위치에서 만족을 느끼며 그곳에서 더 이상 진전을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더 큰 인생의 별 빛이 비추고 있음에도 일어서려 하지 않습니다. 장엄한 주님의 목소리가 울려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신앙은 퇴보하며, 믿음은 폐쇄적인 편협함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 같은 눌러앉은 신앙, 움직이지 않으려는 신앙, 폐쇄적이고 편협된 신앙에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또다시 준엄한 목소리를 높입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이사 60, 1~2) 우리는 분명 우리 인생을 밝혀줄 은총의 별을 보고 축복의 길을 걷는 복된 존재들입니다.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며, 세상이 슬픔의 암흑과 고통의 어둠 속에 있음을 깨닫고 우리를 비추는 별빛을 받아, 어두운 세상을 향해 반사 시키도록 분발해야 합니다. 이제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이 우리 안에서 성취되도록 마음의 별을 따라나설 준비가 되었는지요? 그 별의 인도를 따라 매일 매일 아기가 있는 곳에 도달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일어나 비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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