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5
무릇 사람이 앞서 살았던 성현이나 위인의 말씀을 좌우명으로 할 때는 이미 그 말씀을 육화시켰다기보다 육화코저하는 바램으로 그리 할 것이다. 일일시호일이란 말도 요한 23세 교황님 정도가 되어서야 가능한 경지일 것 같다.
우리같은 범인들에게는 오히려 이백이 사조루에서 이운을 전송하며 쓴 시의 마지막 부분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추도단수수갱류抽刀斷水水更流(尤韻),
거배소수수갱수擧杯消愁愁更愁(尤韻)。
인생재세불칭의人生在世不稱意,
명조산발롱편주明朝散髮弄扁舟(尤韻)。
칼을 뽑아 물을 끊어도 물은 또 흐르고,
잔 들어 근심 잊으려 해도 근심 또 생기네.
세상 살아가자니 뜻대로 되는 게 없어,
내일 나도 모두 버리고(미관말직) 배로 따나려네.
그런날이 있는가 하면
바람처럼 가자
바람에게도 길은 있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느니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고 천상병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