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여 년 전의 이야기다. 도미니칸 수녀회의 연례피정을 의뢰받아 횡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성석제의 단편소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을 읽으며…….
그 책을 읽으며 다른 승객들에게 이상한 놈으로 비치지 않기 위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혼자 킥킥대던 기억이 새롭다. 해학뿐만 아니라 온 몸을 관통하여 전율케하는 통찰은 또 어떻고!
“내 인생은 순간(瞬間)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어느 돌은 매끈하고 어느 돌은 편편하다. 굴러 내린 돌, 금이 간 돌, 자갈이 되고 만 돌도 있다. 아래쪽의 넓적하고 큰 돌은 오래된 것들이고 그것들이 없었다면 위쪽의 벽돌들 모양이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어느 순간은 노다지처럼 귀하고 어느 벽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고 잊어버리고도 싶지만 엄연히 내 인생의 한 순간이다. 그런데 이 성벽은 도대체 누가 쌓은 것일까.
순간이여, 알아서 쌓여라. 누구든 나를 대신해서 순간을 쌓아다오.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모른다.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
- 성석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작가 후기 中에서
사는 동안 시간을 넘어서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사무치게 깨닫는 순간이 있다면 또한 ‘칠흑 같은 절망의 순간’ 도 있게 마련이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것! 양극체험의 깊이와 강도에 따라 일상의 질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보통사람들의 일상은 이런 양극의 체험을 고의로 피해 대체로 중간정도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쪽이든 절정체험은 고원체험을 전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