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마치고 고교입학을 기다리던 2월 어느 날 어스름이 깔리던 저녁 무렵에 마포 염리동의 외할아버지 댁에서 난생처음 산상설교를 통해 예수를 만나다. 그때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던 소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래,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해” 당시 읽던 논어를 단숨에 2급수로 밀어낸 맑은 샘물 같은 말씀이 씨앗으로 심어졌다. 그리곤 50년, 반세기가 흘렀다.
지난 세월에 대한 회상은 보통 회한을 낳게 되는 것인가? 강산이 5번이나 바뀌는 시간이기에 겨자씨와 누룩이 가져왔어야 할 기대치는 커진대 반해 그렇지 못한 현실은 더 초라해진다. 지금의 모습은 열매는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실속 없이 웃자란 겨자나무 같다. 자신의 몸을 녹여 밀가루에 스며들지 않고 저 홀로 덩이져 굳어져 있는 모습에 더 가깝다!
세상을 바꾸고자했던 혁명가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자기 자신 하나 바꾸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목표를 바꾸었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애당초 자신의 변화를 목표로 했지만 그리 크게 변했다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긍정적인 변화가 하나 있다면 전보다 자신과 편하게 지낸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유교의 이상중 하나가 수기안인(修己安人) 이란다. 자신을 닦아 이웃을 편하게 하는 것. 논어를 2급수로 취급하고 1급수로 갈아마셨지만, 성취는 2급수에 준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