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우이령을 오르다 마라톤 대회라도 나가는지 연습을 하는 ‘강북’ 클럽 팀을 만나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고 춘천 마라톤에 참가 신청을 하고 훈련을 하던 때가 2015년. 오르막길을 힘들여 땀 흘리며 뛰어가는 그들을 보며 ‘나도 왕년에…….’ 하면서 잠깐 지난 일을 회상했다.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집회서의 구절을 가사로 작곡한 PETER SEEGER의 Turn, turn, turn 을 흥얼거리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지혜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게 한다. 창세기에서 야훼 하느님이 처음으로 아담에게 건넨 말씀은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이었다. 마틴 부버는 이것을 인간의 유한성을 일깨우는 말씀이라고 한다.
7월말부터 일본 형제들, 중국 형제들의 방문으로 어수선하고 많이 분주했다. 날도 더운데다가 피정자들과 손님들이 수시로 들고나니 정신이 사나웠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의 기아문제를 최초로 해결한 사람이 마오쩌뚱이라고 한다. 생산을 증가시켜서가 아니라 분배를 잘해서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했다고 하는데, 그 후 집단농장의 대실패와 문화혁명 등을 보면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다.
예로부터 중국은 황하 강을 잘 다스려 범람치 않게 하고 관개를 통해 농업을 진흥시켜 수확을 많이 거두게 하는 사람이 실력자로 권력을 잡았었다. 권력자라도 치수에 실패하면 실각하고 만다. 중국이 싼샤 댐을 쌓아 양쯔 강을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은 그러므로 상징적으로도 중국공산당의 집권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모자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고르지 못함이 더 큰 문제이듯,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더라도 빈부의 차가 크면 사회불안 나아가 사회 붕괴까지 초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