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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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베트남에서 양성지도자로 살 때, 제가 지도하던 어느 학생의 죄(?)를 다른 학생의 제보로 뒤늦게 알고 나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 마침 영적 면담의 기회를 통해서 그 문제를 살며시 그 학생에게 물었죠? 그러자 그는 전혀 제게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는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 청빈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말했지만 그래도 아무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구체적인 이름과 금액까지 말하자 그 때 비로써 놀래며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사실 그대로 <미안합니다. 잘못되었습니다.>라는 반성과 부끄러운 고백이면 충분했었습니다. 허나 그에게 그런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변명에 변명만을 늘어놓았던 것이 오히려 제가 더 슬퍼지고 마음이 아팠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뢰를 신뢰로 응답받지 못한 아쉬움 말입니다. 물론 모든 벳남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으로 벳남인은 사실이 드러난다고 해도, 때론 <잘못했습니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생활하다보니 <잘못했습니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며, 이렇게 자기 잘못을 고백하면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불이득을 겪을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한 발뺌하고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스스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모습이며 동시에 용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곧 형제의 사랑에 대해 사랑으로 응답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너에게 죄를 지은 경우> 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흔히 우리가 대응하는 방식은 그를 미워하고 회피하며 배제하려고 합니다. 저도 안식년에서 돌아오자마자 잊을 수 없는 모욕과 상처를 받고 그랬으니까요? “어떻게 내게 그럴 수가 있지!”하면서 속으로 화를 내기도 하고, 속상해하였습니다. 사실 베트남에서 있었던 경우에도 저는 그 학생에 대해 평소에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더 더욱 동일하게 반응했었습니다. 사실 제 성격은 매사 분명하기에 예전이나 지금도 사실 인간적으로 부끄러움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더욱 그렇게 반응합니다. 그런데 왜 복음은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Mt18,15)라고 하는 걸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은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으십시오. 그리스도를 본받아 여러분은 사랑의 생활을 하십시오.>(에5,1-2)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의 생활과 용서의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입니다.>(1코12,13.21)는 신비체의 관점에서 숙고해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인 한 형제가 죄를 지은 상태에서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그 형제가 상처를 입은 채로 그냥 방치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는 것>(1코린12,26참조)과 같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형제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형제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든지 상처를 받고 있는 상태인데 <나 몰라라.>하고 그냥 방치해 버리는 것은 신비체의 정신이나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죄를 지은 형제를 용서해주고 또 죄를 지음으로 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를 다시 하느님께로 데려오기 위해서 그를 타일러 데려 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결코 인간적인 정신으로는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18,15)는 것도 형제에 대한 사랑의 행위이며 배려입니다. 여기서 <타 이르다.>라는 말은 상대방을 꾸짖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레19,17)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말해야 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고 좋은 말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타이르러 갔다가 화해는커녕 더 악화되어 가지고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결과는 바로 우리 모두가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대화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상대방의 속내를 들어주기보다 선입견 내지 편견을 가지고 자기 생각이나 부정적인 느낌을 토로하려는 의도였다면 이런 결과는 당연한 것이라 봅니다. 타이르러 가기 전에 이런 마음 상태라면 만나지 않은 편이 훨씬 더 좋을 듯싶고, 차츰 마음이 진정이 되고 정말 용서해 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사랑의 언어와 행동으로 타이르도록 하는 편이 낫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이론적으로 잘 아는 저 역시 안식년에 돌아오자마자 그 것도 부활대축일에, 그 형제를 차마 타이르지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공동체에 분란을 그리고 함께 했던 중국 형제들 앞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말 할 수 없었던 게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8,18)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처럼 갈등을 매고 푸는 열쇠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이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매고 풀어야 할 사람은 우리에게 죄를 지은 형제가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의 몫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풀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사도 야고보 사도의 권고를 잘 귀담아 들도록 합시다.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진리를 벗어나 헤맬 때 누가 그 사람을 돌이켜 놓았다면, 이 사실을 알아 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놓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고 또 많은 죄를 덮어 줄 것입니다.>(야고 5,19-20)


**오늘 축일을 기억하는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순교사제는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할 용서를 실제로 실천하시고 타인(=아무도 기억하지도 않고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이름 없는 사람, 곧 숫자로만 기억되어질 사형수)을 위해 순교하신 분이십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증거하신 분이 바로 콜베신부님이십니다. 폴랜드의 아우슈비치를 방문했을 때. 저는 그분이 마지막 삶을 사셨던 방에 잠시 동안이지만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느꼈던 점은 콜베 신부의 <제가 이 사람을 대신해도 좋겠습니까?>라고 하셨던 말마디가 제 가슴에서 요동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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