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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4. 25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진다. 남의 집에 손으로 가더라도 빈손으론 가지 않는 법이니, 부처님도 공식적으로 일 년에 한 번 방문하는

초파일에 설마 빈손으로 오시지는 않으시리라.

 

미사 후에 수도원을 나서니 숲에는 안개가 꽤 진하게 번져있다. 안개는 자주 하느님 현존의 메타퍼로 쓰인다. 안개는 무엇이든 감추면서 동시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길을 걷기 시작할 때는 분명 명료하고 명징한 차원에서 길을 나섰지. 그러나 얼마안가 현실과 부딪히고 자신의 한계에 갇히게 되면서 실망한 예수를 만나게 되지. 상념에 젖어 안개 속으로 들어가니 나의 실상도 진했다 연했다를 반복한다.

 

공교롭게 오늘은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이다. 복음의 공식 결말인 16:8에 후일 부활이야기가 부록처럼 더 붙어 결말이 연장되어 있다. 그 옛날 새 신부시절에 서울 명상의 집에서 평일과 주말에는 피정지도를 하고 월요일에는 장미원과 삼양동 달동네에서 마르코 복음을 가르쳤다. 예레미야식으로 말하라고 하면 아마도 그때는 성직자, 수도자로서 인생의 봄날이었다고 할 것 같다. 첫 사랑의 시절, 나를 임의 것이라 불러주셨기에 당신의 말씀은 꿀 송이보다 더 달았다.  전하지 못한 하느님의 말씀은 내 안에서 부글부글 끓었고, 그 말씀을 전하기 까지 배앓이를 해야했던 시절이다.

 

흐르는 것이 어찌 세월뿐이랴! 그때의 새 신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의 몰골은 영락없이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에 나오는 둘째 아들임에 틀림없다. 서품받을 때 까지 고이 간직하고 쌓아올렸던 그 많은 귀중한 것들을 탕진하고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께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탕자가 바로 나의 내면을 잘 묘사한 듯, 그에게 친근감까지 느낀다.

 

돌아가는 길은 오늘처럼 이렇게 안개가 뽀얗게 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신비 속으로 들어가 돌아가는 이의 발걸음이 부끄러움으로 무겁게 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새로워져 처음 길을 떠날 때의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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