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임새 있고 의미 있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에겐 문의 경칩이나 돌쩌귀에 해당되는 기억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그들에겐 데카르트의 양해를 구하면, “We remember: Therefore we are!” 이 되겠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기억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 사건 이전의 모든 일은 그 일이 일어나기 위한 것으로 수렴되고, 그 사건 이후의 모든 역사는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는 Exodus Motif(출애굽의 주제) 와 같은 것 말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부부에겐 첫 만남의 순간이나 결혼기념일이 그것일 테고, 자신의 성소에 충실한 성직자나 수도자라면 하느님을 만나고 소명을 받던 기억이, 의사라면 의사고시에 합격한 일, 보람 있게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라면 교수자격시험에 통과하던 순간들이겠다. 이 핵심 모티프는 우리가 삶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고 삶을 다시금 통합시키기 위해 거듭 돌아가야 하는 “처음처럼”에 해당되겠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함은 설도와 원진처럼 서로의 Exodus Motif 가 어긋나서이지 않을까? 그러면 “不結同心人 불결동심인 무어라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공결동심초 부질없이 풀잎만 맺게“ 되나보다. |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