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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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추석 명절 연휴 잘 지내고 계시겠죠. 그러나 되돌아갈 곳이 없고, 되돌아가야 할 그곳에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들을 기억하면서 오늘 주일 복음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전 사제로써 살아오면서, 제가 누구인가를 가장 진솔하게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면 고백성사 시간이며 장소입니다. 제 어머니가 제 고백성사의 첫 번째 고백자이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고백성사 안에서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영혼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6년 동안, 저는 청주 예수고난 관상수녀회의 고백 신부였었습니다. 가끔은 ’관상수녀원에 사시는 수녀님들은 무슨 고백성사를 그렇게 자주 보실까요?‘ 라는 신자들의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미사와 다른 성사의 경우, 그 수혜자의 영적 상태를 보고나 느낄 수 없지만, 고백성사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백을 듣다 보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과 그렇지 않은 분의 구분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는 분의 죄의 고백은 매우 구체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분은 매우 애매모호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벌쩡합니다. 그런 분들은 마음에서 고백하고 싶어서 본다기보다 보아야 할 때가 되었기에 마지못해 고백하는 느낌이 먼저 느껴집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죄를 많이 지은 것 같고, 그렇지 않은 분은 참된 의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참회하는 마음이 생겨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면 할수록 깊은 내적 통회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영혼들은 고백 끝에 덧붙이는 “그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사해 주십시오!”라는 절묘한 고백을 잘 사용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까요? 예를 들자면, 저는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안경알이 더럽다는 것을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밝은 곳에 가게 되면 안경에 묻은 이 물질들이 너무나도 잘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지저분한데도 불구하고 어두운 곳에서는 의식하지 못합니다. 바로 밝은 곳에서만 얼룩이 많다는 것을 볼 수 있고 더러움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이 어두울 때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밝은 빛 아래 머물다 보면 나의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온갖 죄악들을 밝히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죄를 뉘우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어두운 곳에 있을 땐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고백해도 무덤덤할 수밖에 없고 단지 봐야만 하는 고백성사가 되며, 진심으로 회개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성사의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사의 사효성과 인효성을 참조하십시오.)

주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즉, 회개하는 죄인을 향해 항상 찾아 나서는 주님이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께 나아가지 않는, 아니 나를 찾고 계시는 주님을 오히려 피해 도망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작은아들의 생각과 마음은 모두 바깥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졸라서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을 미리 물려받아 먼 고장으로 떠납니다. 가지고 간 모든 재산을 흥청망청 모두 탕진하자, 자신이 살았던 고장에서 어쩔 수 없이 돼지 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는 배가 고파서 돼지들이 먹는 꼬투리열매로라도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했지만, 아무도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작은아들은 제정신이 든 것입니다. 외부로 나가 있는 삶의 시선이 이제 자기 안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 내면을,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 내면의 어둠, 상처를 바라보고 직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할 때는 갈등의 한가운데 있을 때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하면 자신을 살펴볼 이유를 잘 찾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고생하며, 굴욕을 겪음으로써 변화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런 갈등 상황 안에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미처 보지 않고 지나쳤던 내면을 보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다른 시선에서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선의 변화가 어제와 다른 삶으로, 어제의 거짓된 자아로부터 참된 자신으로 내적 회심을 촉발합니다. 그리고 이를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렇듯 회개란 마음의 변화뿐만 아니라 곧 자신을 포함해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이고 행동의 전환입니다. 

제2독서를 통해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내적 갈등과 그 갈등을 통해서 깨달은 자기 통찰의 고백을 듣습니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사1,13.15~16)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통해 하느님께 다시 돌아서는 회개는 고통과 수치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수치를 사랑과 자비로 변화시키는 은총의 역동성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변화는 서서히 고통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것은 실상 우리들의 왜곡된 옛 태도 때문입니다. 회개의 본질적 의미는 신앙의 체험이며 은총의 역사라는 점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때, 비로소 회심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은총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내적 갈등을 통해서 작은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먼저 달려 나오셔서 자신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 좋은 옷을 입혀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늘 상 그러했지만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더욱더 아버지는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며 살진 송아지를 잡아 줍니다. 늘 있었던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을 작은아들은 다시금 체험하면서 진정한 아들이, 자신이 된 것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처음 가출하려고 마음을 정한 청소년들은 밖에서 온종일 놀다가, 밤늦게 집 근처를 배회하면서 자기 집에 불이 켜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살펴본다고 합니다. 불이 켜져 있으면 집으로 돌아오고, 꺼져 있으면 가출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켜있는 불빛에서 자신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부모, 형제자매의 마음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회개의 체험은 세상과 이웃 사람에 대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예리코의 자캐오는 회개한 후 단절되었던 이웃과 화해합니다. 그 징표로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회개를 통하여 그는 기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기쁨입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15,5.9.31)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기쁨을 우리 함께 기뻐하는 이 자리 이 시간이 됩시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누군가를 하느님께서 잃었다가 다시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영화배우 캐서린 헵번은 “사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내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평생 내가 깨달은 단 한 가지 사실이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에게 자비와 사랑으로 다가오는 하느님을 향해 일어나 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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