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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버찌

by 후박나무 posted Jun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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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장마로 이어질 것 같다. 연일 구름이 낮게 드려 흐리고 간간이 빗방울이 날리는 날씨다. 덕분에 몸은 물먹은 솜처럼 땅으로 가라앉아 스며드는 듯하다, ‘물먹은 솜’ 이란 표현은 중학생때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처음 보았던 기억이 난다. 꼼짝도 못할 정도로 몸이 기진맥진(氣盡脈盡)한 상태를 잘 드러내는 묘사다.

 

오늘도 담담히 우이령에 다녀오다. 내려오는 길에 까맣게 익은 버찌를 몇 개 따먹다. 벚나무 열매인 버찌도 나무에 따라 맛이 다 다르다. 달콤한 맛, 쓴 맛, 신맛, 떫은 맛등. 벚나무의 버찌처럼 수도자들도 각기 다른 맛의 열매를 맺을 터…….수도자가 맺는 열매의 맛을 좌우하는 요소(要素)는 무엇일까? 그것은 처음 가졌던 ‘첫 마음’ 이 아닐까? 그 ‘첫 마음’을 세월의 추이(推移)에 따라 여하히 적절히 변천(變遷) 시켜왔는가에 달린 것 같다.

 

그리스도교 전통의 수도생활에서 가장 말하기 좋고 듣기에도 편한 수도생활의 동기(動機)는 ‘그리스도의 모방’ 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순교(殉敎)였다가 점차 이사야 61장 1, 2절을 인용한 루카 4장 18~19 같이 실용적인 면도 띄게 되었다.

 

나는 박도세 신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듯이 남에게 봉사한다던가, 하느님을 사랑해서라던가 그런 의도는 없었다. 나는 단지 인생이란 수수께끼, 수많은 문제의 장본인격인 하느님을 알고 싶었다. 도대체 이 모든 일이 무슨 의미인지, 왜 그렇게 된 건지 알고 싶었다. 이 모든 질문의 배경에는 어쩔 수 없는 삶의 무상(無常)함이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안다. 그 무상(無常)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무상(無償) 으로 주어진 또 다른 삶을 받았었다. 덤으로 받은 삶이었기에 미련 없이 다시 하느님께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덤으로 받은 삶도 살아가다보면 집착이 생긴다. 빛으로 여기던 것이 실은 어둠이었을 수도 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 “일체의 있다고 하는 것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부글거리며 흘러가는 생명의 강에서 생겨나는 무수한 거품중의 하나인 나, 이제 그 거품이 꺼지려 하는데 다른 거품들과는 달리 모양이 이지러지고 있다. 왜 다른 거품들처럼 꺼지지 않고 이지러져 꺼져 가는가 하고 이의를 제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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