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영화로 만들어진 덕에 엔도의 만년 작품 ‘깊은 강’을 되새겨보다. 사람은 백지상태에서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밑그림이나 최소한 다른 엷은 색이라도 입혀져있는 상태에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고 할까.
어릴 때 혜화동 로터리를 오가며 보던 성당 전면의 부조도 그랬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와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 말은 변치 아니하리라”
신자가 아니었던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그 말에 비판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고 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저 사람은 겸손과는 거리가 멀구나! 하고. 이런 문화충돌을 염두에 둔 사려 깊은 선교는 대화나 소통을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