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여 훈련으로 뛰던 산길을 오랜만에 솔이랑 걸었다. 뛸 때 안보이던 고운 연보라 빛의 개미취와 갈색으로 물들어 떨어진 도토리가 눈에 들어온다. “흐르는 것이 어찌 歲月뿐이랴” 有限한 인간이기에 세월의 推移는 특별한 감흥을 자아낸다.
24일 축성식을 한 속초 청호동 성당 미사를 다녀오다. 등과 기름의 비유는 앉은뱅이와 소경이 서로 협력하여 니르바나라는 시로 간다는 우화를 연상시킨다. 등은 지혜인데, 수행(기름) 없이는 단지 지식에 그칠 뿐 빛을 발하지 못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고 차지할 수 있다. 그리하여 수행의 첫 걸음은, 마음의 단식. 단식을 통해 내가 비워지면 본래 있던 하느님 나라가 나타난다. 루카 17:20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겠느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21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성서는 사람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보지만, 한편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창세기 8:21) 으로 보기도 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대립과 갈등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하느님의 모상을 실현한 분이다. 몸을 지닌 인간으로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즐김은 잦더라도 간헐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님 위해 날 내셨기에 님 안에 쉬기까지는 참 안식이 없나이다” 하셨듯 자주 영원에 잠기려던 노력이 당신을 만들었을 게다. |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