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도회 창립자인 바오로 다네이에 이어 (십자가의 성. 바오로) 두 번째로 성인품에 오른 빈센트 스트람비 주교의 기념일이다. 뛰어난 사목자였던 그분을 기리며 착한 목자의 역할을 되새긴다.
전도서 1:9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 10 "보아라, 여기 새로운 것이 있구나!" 하더라도 믿지 마라. 그런 일은 우리가 나기 오래 전에 이미 있었던 일이다.
성서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도 이 구절은 들어봤음직 하다. 과연 하늘아래 새로운 일이란 거의 없다. 칼 구스타프 융의 인격이론이나 아브라함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 같은 것도 알고 보면 수천 년 된 힌두교의 인간분류나 인생의 단계를 응용한 것이다. 후자의 포인트는 인생엔 월반이 없다는 점이다. 생존이 해결돼야 즐거움을 추구하게 되고, 성공을 꿈꾸며 그 후에 비로소 영원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대개의 성직자 수도자들은 생활고나 민생고 때문이 아니라 삶의 의미나 영원한 생명등 인생고로 인해 출가했을 터…….자연스레 관심사나 만나 쉽게 어울리게 되는 사람도 같은 부류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양떼의 절대다수는 세상걱정, 재물걱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소위 가시덤불로 덮인 땅인 셈이다. 여기서 사목자의 딜레마가 생긴다.
가난이나 불평등의 해소는 정책을 통해 정치가 구현해야 할 영역이긴 하다. 하지만 종교가 성수를 곁들인 자선사업이 아니라 해도, 나눔을 통해 정책의 사각지역을 돌보는 것과 불의한 정책에 대한 비판을 등한시 할 수 없다. 다음 단계의 욕구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올바른 정책을 펼 사람을 선택할 수 있게 양떼를 깨어있게 하는 것도 그 몫이겠다. |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