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대림절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여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길 줄 알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헤아려 남도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게 회개가 아닐까 싶다. 요컨테 돌 심장을 버리고 살 심장을 갖게 되는 것! 이렇듯 존재가 변화하니 행위도 따르게 될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하는 예수의 방식은 요한과 아주 달랐다. 세관장 쟈개오나 세리 마태오의 경우처럼 예수는 먼저 은혜를 베풀어 이에 감격한 당사자들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냈다. 죄 많은 여인처럼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 세리와 창녀들은 이렇듯 비교적 쉽게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여 회개하였지만 바리사이나 사두가이등 당대 사회의 기득권자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들은 가진 것이 너무 많아 함께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정황이 오늘날도 목전에 벌어지고 있다. 너무 많이 가져 돌아갈 수 있는 지점을 (Turning point) 훨씬 넘어버린 세력들은 이제껏 살아온 궤적대로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들이 회개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헛된 희망이 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