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연중 13주일의 독서는 이런 명제를 생각나게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살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잘 살기를 바란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뿐 아니라 행복하게 영원히 살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종교도 행복론이다. 물론 누구에겐 진복팔단이 행복이란 가르침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인생에는 월반이 없다는 말대로 하위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채 승화되어 상위욕구를 갈구하는 일은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인생길에서 지금 필요한 저마다의 과정을 통과하는 중이다. 영원한 생명도 그런 단계를 거쳐 갈망하게 되는 것이리라!
돌아보면 질풍노도와 같던 젊은 시절, 꼭 그렇게 외골수로 듣고 응답하지 않아도 될 인생의 물음 앞에 모든 것을 걸고 모 아니면 도로 응답했던 그 절박한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부활한 예수는 실패한 제자들에게 갈릴레아로 가라고 권한다. 예수가 허망하게 죽은 후의 갈릴레아는 더 이상 예수와 만나고 뜻을 같이하여 어울려 다니며 삶이 살아볼만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로 기억되지 않는다. 과거에 있었던 일의 의미는 고정불변이 아니다. 그 후의 삶의 여정에 따라 그 옛날 있었던 사건의 의미도 달라진다. 나의 삶이란 큰 그림에서 갈릴레아 체험은 그 후의 사건 속에서 어떤 자리에 어떤 모습과 색채로 그려져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