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새 신부때 미국 성. 십자가 관구의 관구총회에 대의원으로 뽑혀 지금은 돌아가신 박 도세 신부님(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과 디트로이트 총회에 참석했었다. 총회후 박 신부님의 배려로 3달간 미국 전역의 우리 수도원을 돌아볼 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샌 프란시스코, 사끄라멘토, 시카고본원, 디트로이트, 세인트루이스, 루이 빌, 뉴욕, 로데 아일랜드, 워싱턴디씨, 플로리다, 앨라배마, 휴스턴, LA, 하와이까지…….
내가 장상이 되기 전엔 박 신부님이 얼마나 크게 배려하셨는지 몰랐었다. 덕분에 젊은 나이에 수도생활의 4계를 모두 미리 보았다.
골리앗을 물리치고 혜성처럼 나타난 다윗이나, 예수님처럼 갈릴레아에서의 눈부신 활동을 통해 선풍을 일으키며 등장하는 것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의 전유물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보통 사람들 대부분에게도 꽃망울이 일제히 터뜨려지듯 찬연히 빛나던 봄날이 있었다. 이내 꽃은 시들어 떨어지고 열매를 향한 고단한 나날이 이어지며 사계절이란 한 사이클이 완성된다. 예수의 직전제자들의 경우 그분과 함께 했던 시간이 봄날이었을 것이다.
인드라망의 그물코에 걸린 구슬이 우주 삼라만상을 반영하듯, 봄날이란 한 계절도 과거와 현재, 미래를 포함한 사계를 모두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 인생은 순간(瞬間)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어느 돌은 매끈하고 어느 돌은 편편하다. 굴러 내린 돌, 금이 간 돌, 자갈이 되고 만 돌도 있다. 아래쪽의 넓적하고 큰 돌은 오래된 것들이고 그것들이 없었다면 위쪽의 벽돌들 모양이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어느 순간은 노다지처럼 귀하고 어느 벽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고 잊어버리고도 싶지만 엄연히 내 인생의 한 순간이다. 그런데 이 성벽은 도대체 누가 쌓은 것일까.
순간이여, 알아서 쌓여라. 누구든 나를 대신해서 순간을 쌓아다오.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모른다.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 성석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작가 후기 中에서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물론, 진부한 순간까지도 그 안에 전 삶을 내포하고 있을 것 같다. 마태오복음 13: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