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탑을 보수하다가 불경과 사리를 발견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한다. 이스라엘도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성전재건 사업중 옛 율법서를 발견하고 오늘 회중들 앞에 선을 보인다. 이 순간은 이스라엘의 긴 역사에서 소위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는 순간이 예수의 전 생애에서 그러하듯이.
순간이라는 벽돌이 쌓여 삶이란 성벽을 이룬다는데 몇 안 되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은 주춧돌이 되고,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이 되겠지. 그리고 그 후 오랜 세월 진부하다 못해 남루하기까지 한 순간들로 이루어진 일상이란 벽돌도 필수일 테고.
몸의 지체에 대한 바오로의 비유도, 성석제의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도, 조각그림 맞추기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때 명동성당에 안치된 그분의 유해를 보면서 바쇼의 하이쿠를 생각했었다. “너무 울어서 / 텅 비어 버렸나 / 이 매미 허물은” 여러 벽돌로 잘 쌓여진 성벽이든, 조화를 이룬 신체든, 잘 맞혀져 완성된 조각그림이든 궁극의 지향은 세상을 담을 수 있게 텅 비어지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