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 바오로 다네이 수도회 창립자 대축일이자 박 도세 신부님 선종 8주기다. 창립자의 삶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다보니 석가모니(고오타마 싯다르타)의 삼법인에 까지 이르다. 삼법인(三法印):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 모든 것은 변화하며 고로 고정불변인 자아는 없고, 실체적인 자아가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면 고요하고 평안한 적정에 이른다.
지난여름 혹독한 더위에 시달리다 불과 며칠사이에 날씨가 돌변하는 것을 보며 ‘냄비근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석가모니가 어머니를 사별하지 않았어도 성인이 되어 생로병사에 천착했을까?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당하지 않는 다해도 그 영향은 지대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죽음이 잦았던 바오로 다네이의 가정환경도 그가 영원한 생명을 찾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14세기 라인 강의 신비학파가 융성한 것도 당시대에 흑사병이 창궐한 것과 무관치 않다. 말하자면 십자가의 성. 바오로도 라인의 신비학파 영성가들인 마이스터 엑크하르트나 요한네스 타울러의 먼 제자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 고통인 죽음까지 포함하여 고통이 낯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까닭도 의미도 알 수 없는 고통은 골고다의 오른쪽 죄수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받아들여 다시 예수께 건넬 때 해결의 실마리가 생긴다(갈라디아 2:19-20). 고난 받는 야훼의 넷째종이 그 모든 고통과 고난을 많은 이의 대속 물로 바칠 때 함께 바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내 탓이며 네 탓이고 하느님 탓이기도 한 고통은 동시에 내 탓도, 네 탓도, 하느님 탓도 아닌 누구의 탓도 아닌 것이 되며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부글부글 끓으며 흘러가는 생명의 강에서 생겨났다가는 이내 사라져버리는 수많은 수포중 하나가, 자신이 생겨났다 이내 터져 다시 생명의 강으로 되돌아가는 전 과정을 본다면 금강경의 위 구절을 읊으며 영원한 생명을 찾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