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19.10.22 10:37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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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사뮈엘 베게트(아일랜드)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1952년 쓴 작품으로 1969년 노벨문학상 작품)를 산울림 소극장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그런데 젊은 날 이 연극을 보면서,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는 도대체 누구이며, 도대체 고도가 누구기에 그토록 가엾은 두 남자인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는 허무와 고통, 부조리와 무료함 속에서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렸을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이 연극을 보신 분이나 책을 읽으신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에게 있어서 고도는 누구이며, 왜 기다림 속에서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연극을 미국에서 초연할 당시 연출자였던 알랭 슈냐이더는 베게트에게 질문했답니다. <고도는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그러자 베게트가 대답하기를 <내가 그것을 알았다면 작품 속에 썼을 것입니다.>라고 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은 길며 그것도 아주 깁니다. 이 긴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삶입니다. 이처럼 인생은 기다림이며, 이로써 인간은 기다림의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삶의 혼돈과 부조리, 무질서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지 그리고 왜 기다려야 하는지를 모르는 채 희망 없이 기다려야 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정말 무료하고 불쾌하고 허무하게 느껴지며 너무나 힘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오늘 복음(Lk12,35~38)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허리에 따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 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오실 주인은 <사람의 아들>(21,36참조)이시며, 기다리는 사람은 인간 존재 곧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에게 오실 분은 예수님이시며, 기다리는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들이기에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21,36참조)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단지 막연히 알 수 없는 존재를 기다리는 실존이 아닙니다. 다만 그 시간과 그 날을 알지 못할 뿐, 우리는 누구를 기다려야 하고 왜 기다려야 하며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 가를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 기다림의 길고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무료하고 불쾌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희망으로 깨어 준비한 채 기다려야 합니다.

 

시장 보러 나가신 엄마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정말 엄마를 곧 다시 만난다는 기쁨으로 넘쳐났었던 기억이 우리 모두에게는 생생합니다. 이렇듯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은 만남을 앞당겨 상상하면서 기쁨과 환희, 행복과 사랑으로 넘쳐나는 기다림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준비와 기다림은 손등과 손바닥과의 관계라고 봅니다. 준비는 미리 마련하여 갖추어 두는 것이고, 기다림은 늦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다림의 목적에 부합하고 필요한 것을 미리 마련하여 잘 갖추고 있으면 기다리는 분이 언제 오시든 아무런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으리라 봅니다.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 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어디 한두 번 겪어보셨나요. 이와 마찬가지로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늘 복음에서 언급한 것처럼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12,35) 그래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마치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에 빗대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발견되기도 합니다.(Mt24,43-51; Mr 13,34-36)

 

비록 잠시 뿐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여러 이유로 만나지 못했다가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과 행복은 충분히 기다림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보답이듯이, 하물며 주인을 깨어 준비하고 기다렸다가 주님(=주인)께서 이런 우리의 충실함과 그 노고를 잘 알아주신다면 이 보다 더 큰 기쁨과 영광이 없으리라 봅니다. 복음에 의하면, 이런 우리의 주님을 깨어 기다리는 우리의 성실함을 주님께서는 인정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 곧 <주님께서 띠를 매고 저희를 식탁에 앉게 한 다음에 시중을 들 것이다.>(12,37)라고 말씀하시니 이 얼마나 큰 영광이며 축복이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분명 이렇게 길고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주님의 오심을 늘 깨어 준비하며 살아 온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천상에서 오늘 복음 말씀과 같이 해 주실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 이를 알면서도 이렇게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늘 깨어 준비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저 자신부터가 때론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온전히 깨어 준비하며 주님을 기다리며 살지 않았기에 그럴지 모릅니다. 허나 우리는 오늘 복음을 다시금 새롭게 들으면서, 길고 긴 인생을 무료하고 불쾌하게 허무하게 보내지 않고 의미와 보람으로 채우기 위해서 영적으로 이 기다림의 신비를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임을 다시 자각하고, <늘 깨어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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