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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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베트남에 살았을 때, 저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식사 당번을 하였습니다. 매번 식단을 생각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열심히 정성스럽게 준비하였습니다. 물론 공동체 형제들이 전부 한국 사람이었으면 차라리 부담이 적었을 텐데 외국 형제들과 살다 보니, 무슨 반찬을 해야 할지 때론 신경이 쓰였습니다. 여성들은 공감하겠지만 밥 짓는 사람의 행복은 식구들이 밥을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볼 때 행복하다고 합니다.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단지 식사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준비하고,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행위이고, 그러기에 밥상은 단지 밥 만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어 먹으면서 한 가족임을 일깨우는 성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 수도회 일과표에 식사 시간 역시 공동체 시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형제들이 좋아할 음식을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마치 밥상이 제단이 되는 또 다른 미사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김지하 시인은 자신의 시 <밥>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 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이처럼 밥을 나누어 먹는 일은 자신의 존재를 나누는 일이기도 합니다. 함께 걷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동반자companion이란 단어는 함께com와 빵panis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빵을 함께 먹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인생의 길을 함께 간다는 것이고, 나의 존재를 함께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부르는 것은 먹는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상호 간의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지는 일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먹는 일은 생존의 기반이기에 밥을 함께 먹는 일은 생명을 함께 나누는 생명의 축제이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나누는 사랑의 축제입니다. 

저는 사제로써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거의 매일 미사를 집전해 왔습니다. 때론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전 마지막으로 입원하셨던 2005년 3월 성목요일을 기해 교황님께서는 당신이 극진히 사랑하셨던 모든 사제에게 유언과도 같은 서한을 보내셨습니다. 그 편지 주제가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저는 이 편지가 단지 교황님께서 사제들에게 보낸 서신 이전에, 특별히 개인적으로 그분에게서 사제서품을 받았던 저에게 주신 마지막 권고라고 생각하면서 읽었고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나 감동적이고 또 의미심장합니다. <사랑하는 사제 여러분, 저는 다른 환자들과 나란히 병원에서 회복을 기다리며 성찬례를 통해 저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고통에 일치시키면서 여러분을 생각합니다. 온 교회가 성찬례에서 생명을 얻으므로, 사제의 삶은 더욱 성찬례로 구현되는 삶이 돼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제들에게 '성찬 제정문'은 축성문 이상의 것, 곧 '생명의 조문'이 돼야 합니다. 성체성사 때 모두 경건히 침묵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엄한 말씀을 되풀이할 때 우리 사제들은 이 구원의 신비를 전하는 특별한 전령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찌 설득력 있는 전령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사제들을 향한 교황님의 충고 말씀은 제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신자들은 성체성사를 통해서 너무나 행복해하는데, 구원의 방주에 오른 것이 너무나 기뻐서 저리도 감사하는데, 정작 가장 성체성사 가까이 서 있는 저, 매일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사제인 저는 별 감흥이 없던 때가 많았음을 깊이 반성합니다.

예수님은 이제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되자 극진히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시고, 그 식사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Mr14,22) 그리고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14,24) 이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성체성사에 관한 가르침은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 예식을 행할 때마다 당신을 기억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에서 사제가 축성하는 빵과 포도주를 통해 주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억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곧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면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현재 우리 삶 안에서 재현해야 합니다. 곧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늘 기억함으로써 성체성사의 삶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성체 성사적 삶의 시작이 됩니다. 사랑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 사랑을 보답하는 길은 그분들이 나에게 해주신 가없는 그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결코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그분들의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 작은 보답이라도 드릴 수 있으며, 불효를 저지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또 다른 세대에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셨으며, 당신의 사랑을 보고 배운 우리가 그 사랑을 또다시 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같은 내리사랑이 가능하게 하는 힘은 기억입니다. 아름답고 감사로운 사랑을 잊지 않을 때, 사랑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성 바오로는 기념과 기억의 제사, 사랑의 성체성사를 기억하며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11,23-24) 우리는 지금까지 삶의 위기와 고통의 순간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도와주고 염려해 주는 수많은 이웃들의 기도와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의 사랑 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웃을 통해 우리 각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피 흘리시고 죽으신 주님의 사랑, 그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 잘 아는 성 마더 데레사가 한국에 오셨을 때입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마더 데레사는 하루에 성체를 두 번이나 영한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듣고 보니 하루에 미사를 두 번 참례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아침 미사 때 성체를 모시며 예수님과 만나고 그 후에는 하루 일을 하며, 즉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며 그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 예수님을 두 번씩 만난다는 것이지요. 소외받고 죽어가는 이들과의 만남이 두 번째 영성체라고 이야기하던 마더 데레사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오시는 주님을 우리가 언제 만날 수 있겠습니까? 내 것을 나누고 이웃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노력할 때 그곳에서 이웃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체를 영한다고 해서 모두가 거룩해지고 모두가 주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주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잠시 후에 우리는 또 주님의 몸을 모시게 됩니다. 주님의 몸을 모시면서 진심으로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주님과 일치되어 사랑의 삶을 살고자 결심한다면, 마더 데레사와 같이 어려운 이웃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힘겨운 삶의 현장에서도 평화롭고 풍요로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 사랑을 나누면서 일상의 삶 안에서 풍성히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복음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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