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사가는 가르침의 연속성을 위해 이야기의 초점을 예수님에게서 성령으로 이동시킨다. 성령하면 처음 떠오르는 말은 ‘기억’이다. 우리 고난회도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설립된 수도회다(Memoria Passionis).
하지만 기억이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식(Niente di nuovo sotto il Sole!) 의 단순한 ‘반복’에 머물지 않으려면 ‘당신의 모든 일을 곰곰이 생각하며, 장하신 그 일들을 깊이 헤아리는’(시편 76:13)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기억이 반복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라는 영원에 들어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일상을 느끼려면 말이다. 그는 날마다 반복되어 남루한 일상이 되기 쉬운 일도 난생 처음 겪는 듯하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난생 처음 먹어본다”든가 ‘이렇게 장엄한 일몰은 내 생애에 처음이다“ 등으로.
이렇듯 기억을 단순한 반복의 차원에서 영원에 이르게 하는 열쇠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 아닐까.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논어 위정 11장-
공자께서 말했다. “지난 것을 잘 익혀 새로운 것을 알아야 스승이 될 수 있느니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시대에 맞게 번역하면 매일 업그레이드(upgrade) 하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