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19.10.16 08:41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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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복(福)도 그리고 화(禍)도 다 하늘이 내리며, 福 담을 그릇에는 복이 담기고, 禍 담을 그릇에는 화가 담기기 마련이라고 봅니다. 명심보감의 <성유심문>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운 표현이 있습니다. <복(福) 담을 그릇과 화(禍) 담길 그릇이 뚜렷이 대비됩니다. 맑고 검소한 그릇에 복이 담기고, 스스로를 낮추어 한 발 물러서면 덕을 쌓습니다. 부글거리거나 출렁거리지 않는 고요하고 안정된 눈에 가야할 길이 보이고 화목하고 따뜻한 곳에 생명이 자랍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고, 탐욕스러운 사람이 화를 당합니다. 경솔하고 거만하면 잘못을 저지르고, 옹졸하고 어질지 못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는 복과 화, 죽음과 생명, 불행과 행복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그릇에 각기 다른 결실을 담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화를 선택하느냐, 죽음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생명을 선택하느냐 하는 그 사이에서 인간 실존과 생애가 전개된다고 봅니다.

 

삶을 살아오면서 저 역시도 때론 함께 사는 형제들을 꾸중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꾸중을 듣는 형제는 마음이 많이 불편했겠죠. 저도 역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불편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오늘 복음(Lk11,42~46)에 보면 예수님께서 호되게 바리사이들의 여러 처신들에 대해서 꾸중하시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 차례나 공개적으로 <불행하여라!>(11,42.43.44)라고, 꾸중을 듣는 바라사이들은 여간 불편하고 힘들었겠죠. 허나 꾸중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 꾸중에 안타까운 마음이 내포되어 있음을 안다면 이는 마치 몸에 좋은 약은 쓴 것처럼 좋은 것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꾸중을 듣고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었다면 불행이 아닌 참으로 행복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꾸중하지는 않습니다. 잠언에 보면, <아버지가 아끼는 아들을 꾸짖듯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꾸짖으신다.>(3,1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꾸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도 불편했지만 그들이 마음을 바꿔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진심어린 꾸중이며 권고였던 것입니다. 허나 바리사이들은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아니꼽게 여겼고 트집을 잡으려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말씀을 듣지 않았고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행하려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십일조는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회당에서는 윗자리에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며, 드러나지 않은 무덤과 같아서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줄 모르기 때문이다.>(11,42.43.44)라고 질타하셨습니다. 첫째, 바리사이들은 십일조의 규정을 철저하게 지켰지만 정작, 율법의 핵심인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을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나무는 보면서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본질인 율법의 정신이 빠진 규정에만 얽매였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도록 일깨우신 것입니다. 둘째로, 바리사이들은 언제나 몸에 밴 특권의식으로 남 보다 더 높은 자리와 어디서나 사람들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과시욕이 강함을 질책하신 것입니다. 이는 곧 당신이 몸소 실천하셨던 낮은 자리, 끝자리에 앉도록 권고하시고 그렇게 사셨으며,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삶을 살도록 질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바리사이들의 드러나지 않은 위선,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은 처신을 꾸중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에게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11,46)라고 질타하셨습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론 바리사이들의 처신도 마땅히 꾸중 들을 만한 태도와 행위이지만, 율법 교사들의 행위가 더 질타와 질책을 받을 행위라고 봅니다. 바리사이들의 그런 행위가 상대적으로 타인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허나 율법 교사들의 행위는 타인에게 많은 어려움과 피해를 그리고 삶의 질을 어렵게 만들고 힘들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힘들고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 주려고 부단히 노력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교사들은 예수님의 사랑어린 꾸중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에 변화하려는 노력 조차하지 않았습니다. 꾸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사실 불편하지만 행복한 일입니다. 꾸짖거든 말하는 이의 진심과 사랑을 되새기면서,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는 지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제 길이 바르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이는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잠12,15)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의 불행은 단지 그들이 살아온 언행불일치적인 삶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처신이었지만 더 큰 불행은 예수님의 충고를 그들은 귀기울여듣지 않음에 있습니다. 알아듣는 사람은 알아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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