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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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다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을 이지적으로 명징(明澄)하게 깨달은 것은 19살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다. 돌이켜보면 그 날 마주한 대주제 –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 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 사실을 깨닫고는 사흘간 식음을 전폐하였으리라! 그것이 그렇게 내게 충격을 주었던 이유는 아마도 무의식적으로나마 자기어미의 죽음이라는 전이해(前理解) 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싯다르타의 출가를 재촉한 것은 생로병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평범한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다시 말해 그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에 그토록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뭔지 모르게 그러리라 상상했던 삶의 상황이 현실화된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19세 때 맞닥뜨렸던 ‘사람은 죽는다. 나는 사람이다. 고로 나는 죽는다. 는 깨침은 내 삶을 깊이 허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고, 나도 살기위해 더 이상 그 허무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죽을힘을 다 썼다. 마치 절벽의 양끝을 이은 외줄을 타고 심연을 건너는 심정이었다. 양옆에선 한시도 쉬지 않고 허무가 거친 파도처럼 혀를 빼물고 달려들었고 거기에 조금만 한눈을 팔기라도 한다면 바로 깊은 구렁으로 빠져버릴 형편이었다. 신약성서에서는 이와 아주 유사한 비유를 물위를 걷고자 한 베드로의 이야기에서 잘 볼 수 있다. 무의미의 바다 혹은 허무의 바다를 건너는 배는 위험에 빠졌고 예수의 자유를 부러워 한 베드로는 그를 이미테이션 하지만 시선이 믿음에서 비껴나가 다른 것을 볼 때 환상은 현실로 그를 덮친다. 그런 체험이 몇 번 있은 후에야 비로소 베드로는 죽고 사는 부활을 이해했을 것 같다. 루카는 황혼에 길게 그림자를 언덕에 드리우고 서있는 세 걔의 십자가를 우리 뇌리에 각인시켜 준다. 인생 최후의 순간, 그리고 황혼이 아름답기에 슬픈 날이기도 한 그날 저녁, 세 사람은 저마다 인류를 대표하며 삶을 마무리한다. 사람은 죽는 그 순간에도 생명을 선택할 수 있음을 보이면서……. 야훼의 고난 받는 넷 째 종의 이미지는 이 황혼의 언덕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부활체험을 통해 내가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삶에 너무 집착했었기 때문임을 깨닫고 놓을 수 있었을 때 나는 새 삶을 받았다. 어머니의 때 이른 죽음으로 나는 이 삶이 안전치 못하다는 예단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불안전한 차안에 눌러 앉아서 살기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찾을 수밖에……. 많은이들의 그러한 소박한 바램, 소망이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형태로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 잉태되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은 더도 덜도 없이 내가 변한 만큼만 변한다.

 

무상(無常)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무상(無償) 으로 주어진 또 다른 삶을 받았다. 무상(無償) 의 삶을 산지 거의 40년, 이젠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그런 선물이었던 새 삶도 그 세월이 흐르는 동안 쉽사리 다시 일상이 되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진단받은 병은 아마도 나를 한 단계 높은 의미의 세계로 이끌어 십자가상의 말씀을 다시 듣게 한다. 병의 치료를 위해 먹는 약의 부작용으로 불면증이 심하다. 밤 12시나 1시등에 깨면 다시 잠을 자기는 어렵다. 이렇게 홀로 깨어 자리에 누워 있다 보면 죽음은 이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현존을 알려온다. 아주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그래도 지금 가자고 하면 살짝 섭섭할 게다. 죽음을 아주 가까이 느낀다 함은 차안과 피안이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음을 시사한다. 같이 있을 뿐 아니라 서로를 꿰뚫어 있는 것 같다. 다만 드라마를 제작하는 PD의 선택으로 지금 이 순간 1번 카메라가 잡고 있는 장면이 송출되던가. 2번 3번의 카메라가 잡고 있는 현실이 송출될뿐이다.

 

우리 안에 그런 의식이 깨어나면 사는 일은 한결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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