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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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늘 복음을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로 시작하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철학자 베이컨은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편견을 네 가지 우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종족의 우상입니다. 이것은 세계의 모든 현상을 인간의 관점에서만 보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인본주의적인 생각이 옳은 것만이 아님을 장자는 제물론에서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사람은 습기가 많은 곳에 살면, 허리 병이 생기지만 미꾸라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무 위에서 사람은 불안해하지만, 원숭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둘째는 동굴의 우상입니다. 이것은 동굴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개인적 경험이나 성격적인 편견으로 인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우물 안 개구리‘란 표현이:<<장자莊子의 〈추수(秋水)〉》에 나오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있다. <북해의 해신(海神)이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만 알기 때문이며, ‘여름 벌레는 얼음을 말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여름밖에 모르기 때문이다.(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氷, 篤於時也.)'>>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시장의 우상입니다. 이것은 말 때문에 생기는 편견을 말하는 것으로, 베이컨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잘못된 말과 소문이 많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사람마다 가지는 편견이 있습니다. 마지막 넷째는 극장의 우상입니다. 베이컨은 무대를 보고 환호하는 관객들처럼, 전통이나 권위에 의지하여 나타나는 지식이나 학문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켜 극장의 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과거에 나온 이론들을 권위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추종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비유하나 더 들려줄까요? 미국 캘리포니아 의과대학의 교수가 이제 머지않아 의학 공부를 마치고 바로 현지 병원에 나가서 환자들을 진찰하고 치료하게 될 학생들을 놓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가르치는 중에 한 사례를 들어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매독균에 걸려 있고, 어머니는 폐결핵 환자이다. 이 둘 사이에서 아이 넷이 태어났는데, 첫째 아이는 매독균으로 인해서 장님이 되었고, 둘째 아이는 이미 병들어 죽었고, 셋째 아이는 역시 이 부모들의 병 때문에 귀머거리가 되었고, 넷째 아이는 결핵 환자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또 임신을 했다. 이런 경우에 그대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학생들은 입을 모아 대답합니다. <유산시켜야 합니다. 아버지가 매독 환자요 어머니가 폐결핵 환자이며, 이미 낳은 아이 넷도 다 그 모양이 되었는데, 이러한 악조건에서 아이를 또 낳아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유산시켜야 됩니다.> 그러자 교수는 점잖게, 아주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대들은 지금 베토벤을 죽였다.> 우리가 아는 악성樂聖 베토벤은 바로 그런 환경 가운데서 1770년에 태어납니다. 아버지는 매독 환자요, 어머니는 폐결핵 환자요, 형제들도 다 병들어 그 모양이지마는 그 가운데서 태어나 57년 동안 작곡 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그도 나중에는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마는 그런 가운데서도 많은 불후의 명곡을 작곡하게 됩니다. 무릇 우리 인간의 판단과 사고가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되기 쉬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교수는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환자들을 대할 때에 이 사실을 잊지 말라. 의학적 지식이 좀 있다고 해서 이렇게 저렇게 치료하고 수술하고 없애고 할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하느님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겸손하게 신중하게 할 것이다.> 

지난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자렛의 회당에서 이사야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공생활의 청사진을 제시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에 탄복하였지만, 그들은 즉시 예수님의 출신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 안에 활동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손길은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출신과 신분만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곧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밑바탕으로 한 편견과 선입견에서 예수님을 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향 사람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4,24)는 말과 더불어 구약성서 열왕기에 나오는 엘리야 예언자가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를 기근에서 구해준 이야기와 엘리사 예언자가 시리아 사람 나만의 나병을 고쳐 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모두 하느님이 예언자를 통하여 은혜로운 일을 하셨는데, 그 수혜자들이 모두 이방인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에 사람들은 모두 분통을 터뜨리고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끌어내어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4,30)는 말로 오늘 복음은 끝납니다.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왜 분개한 것일까요? 그가 목수인 요셉의 아들인 주제에 잘난 척 말하고, 엘리야와 엘리사 두 예언자를 거명하면서 이방인들과 자신들을 견주어 비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그런 예언자적 말씀과 행위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분을 미워하고 거부하였고, 그들의 분노와 증오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의 길을 가셨으며, 결국 예루살렘 밖 골고타 산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의인들이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일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공자는 누구보다도 사리 분별이 뚜렷하고, 대의명분을 밝히는 데에 누구보다도 해박하고 총명한 인물이었지만, 유독 고향에 머물 때는 의기소침하고 침묵만 지켰다고 합니다. 공자의 전기인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따르면, 그 까닭은 바로 그가 사생아였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 공자의 높은 가르침은커녕 그 인격 자체도 인정과 존경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배척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 이러한 냉대의 원인은 사실 예수님의 인격이나 언행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고향 사람들의 비뚤어진 관점입니다. 고향 사람들의 태도는 ‘구체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반응’이라기보다는 ‘투사적 관점에 대한 주관적 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에 기준하여 바라본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신기하게도 사물의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으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을 통해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은 믿는 이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의 편견을 넘어서지 못한 믿음을 애석하게 여기시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기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부정적 반응은 나자렛 회당에서 주님께서 하신 첫 복음 선포 연설이 실패한 듯 보이게 합니다. 고향 사람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자신들의 약점을 들추어대는 예수님께 화가 잔뜩 나서 주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서 떨어뜨려 죽이려 합니다. 이는 단지 고향 사람에게서만이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공생활 동안 많은 사람에게 거부와 배척을 받을 것임을 암시하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왜 쉬운 길이 아닌 어려운 길을 선택하셨을까요? 고향 사람들의 기적에 대한 요구에 응답해서 기적을 베풀었다면 환영과 환대를 고향에서 받았을 텐데 왜 굳이 배척과 거부를 자초하셨을까요? 그 까닭은 역설적으로 고향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현세적인 기대충족과 기적만을 집착했지,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자유와 눈뜸과 해방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바람과 그릇된 기대는 자신들의 생각 속에 하느님을 끼워 맞추는 오류를 범하게 합니다. 편견은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이 아닌 자신들의 기대에 맞는 하느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유혹과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베이컨 말한 대로 우상에 빠졌습니다. 이런 그들에게는 하느님은 단지 구멍을 메꾸는 하느님일 뿐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주님은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서 실패가 불가피하겠지만, 어떻게 세상의 그릇된 요구에 응답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신다고 봅니다. 복음 선포자는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기대와 필요에 따라 혹은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끼워 맞추는 유혹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은 주님의 생명과 사랑이 우리 내면으로 흘러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 방해물입니다. 외적 성공보다는 주님의 뜻과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게 더 중요한 복음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전합니다.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1,17.19) 우리는 스스로 반드시 무엇인가 이뤄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두려워하고 떨곤 합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넘어지고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때론 인생은 성공보다 실패를 통해 더 성장하고 더 성숙하게 된다는 점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기에 어려운 길보다 쉬운 길을, 올바른 길보다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서 살아가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실패의 지름길이며 편견이란 우상 속에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릇된 편견의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예수님 또한 실패자였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참된 자신을 찾느냐 찾지 못했느냐, 자신의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소명에 충실했느냐 불충실했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시71,15.17),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1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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