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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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저희 수도회 마 레이몬드 신부님께서 청주교구 내수 본당 주임 신부로 활동하셨을 때, 가까운 곳에 운보 김기창 화백이 살고 계셨죠. 그런 인연으로 그분이 마 신부님에게 주신 그림 한 점이 지금 서울 우이동 명상의 집에 있습니다. 운보 화백은 뒤늦게 말년에 미국에서 수녀가 된 딸로 인해 베드로라는 본명으로 세례받았으며, 2001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분은 어렸을 때 병으로 귀가 들리지 않아 말더듬이 화가로 유명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참 많은 일화를 남긴 분이신데, 청송교도소 재소자들의 교화를 위해 교도소장이 운보 화백에게 그림 한 점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운보 화백은 조건으로 그림을 교도소에 직접 가서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달식 날, 김기창 화백이 마이크를 잡고, 재소자들에게 던진 첫마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더듬이신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 바로 <병신 새끼들아!>라는 말이었습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다시 운보는 말을 이어 갔습니다. 강당에 모인 모든 사람이 다 깜짝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모두 그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나 또한 병신이다! 내가 벙어리이니 나도 병신 머저리다. 그렇지만 나는 몸은 병신이지만 정신은 건강하다. 그런데 당신들은 몸은 건강한데 정신은 병신이다. 그래서 내가 욕을 한 것이다. 나는 비록 몸은 병신이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성공한 화가가 되었다. 나는 타고난 재주나 조건을 믿지 않는다. 내 재주를 갈고닦아서 성실히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왜 건강한 몸으로 이런 무시무시한 교도소에 들어와서, 이 지옥에서 죽을 고생을 하는가?> 그렇게 공식 행사가 끝나고, 교도소장에게 부탁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청각장애 재소자를 만났습니다. 청각장애 재소자의 방에 들어선 운보 김기창은 그를 꽉 껴안더니 볼을 비비고 울면서 이렇게 말해 주었답니다. <병신 된 것도 서러운데 왜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생고생이야!> 

 

오늘 예수님께서 여행하신 거리는 상당히 먼 거리였기에 무척 힘든 여행이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길고도 험한 여정에서 예수님께서 힘드신 것은 그 먼 거리와 여행의 힘듦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힘든 것은 성서에 아무런 암시가 없지만,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과도 흡사한 사람, 곧 믿음의 사람을 그 어떤 지역에서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오늘 복음의 <귀먹은 반벙어리> 치유 이야기는 단지 눈에 보이는 치료와 치유 사건 이면의 다른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농아聾啞란 본디 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을 표현하는 단어로,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이거나, 운보처럼 본디 말을 할 수 있었으나 어떤 원인으로 그 능력을 상실한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이는 귀먹은 반벙어리로 청각장애를 갖고 있기에 언어 장애로 인한 언어 구사 능력이 떨어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곧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지만, 들어도 듣지 못하고, 들어도 말하지 못한, 곧 자기 탓으로 듣지 못하기에 진리의 말도 하지 못하는 세상의 수많은 영적 청각 장애인들에 대한 본보기입니다. 복음에는 이런 교훈적인 사례가 여러 차례 나오는데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수난 예고를 하신 다음에 꼭 등장하는 시각장애인의 치유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마태오 20, 17~19절의 수난 예고와 20, 29~34절의 예리코의 시각장애인의 치유 이야기처럼 귀먹은 반벙어리는 곧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듣는다고 해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자들과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이 이에 속합니다. 이 모든 영적 청각 장애인을 향해 예수님께서 외치십니다. <에파타!>(7,34), <귀가 열려라.>고 말입니다. 

 

<들음과 말함>은 상호불가분의 본질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느 영어 학원 선전에 <귀로 듣고 따라 할 수 없으면 영어를 배울 수 없다.>는 표현도 있더군요. 이처럼 모국어든지 외국어 학습에서 기본은 <말하기>보다 우선하는 것이 <듣기>인데,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로10,17)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듣는 인간이며, 구원은 그러기에 듣는 인간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인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때 입술에서 진리가 나옵니다.(예레7,28참조)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치유 과정에서 보여 준 몸짓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하고 말씀하셨다.>(7,33~34)고 치유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당신 손가락으로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귀에 넣으셔서 막힌 귀를 뚫으신 다음에,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신 후에 <열려라!>하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결국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제대로 듣지 못함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셨기에 먼저 막힌 귀를 당신 손으로 뚫으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왜 그의 혀에 당신 침을 발랐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런 상징적인 치료를 통해서 그의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참고적으로 서양의학에서는 침을 대단히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한의학에서는 침은 살균과 해독 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소화기 병을 고칠 수 있는 명약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침 속에는 살균과 소독 작용을 하는 요소들이 들어있습니다. 입안에서는 웬만한 상처가 생겨도 화농하지 않고 금방 치료가 됩니다. 그 까닭은 아마도 입안에 세균들 가운데 화농균을 죽이는 미생물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피부병에 침을 바르면 잘 낫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침은 또한 입안의 세정작용을 돕고 입 냄새를 없애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가 오시면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이35,5)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오늘 예수님을 통하여 실현되었음을 군중들은 실제로 목격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보고 더할 나위 없이 놀래서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되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구나.>(7,37)라고 탄복합니다. 이 치유의 이야기는 그러기에 단지 한 사람의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한 이야기가 아닌,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향한 치유의 몸짓이며, 영적으로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담긴 예수님의 명령이자 외침입니다. <에페타, 열려라!> 이는 곧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향해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그토록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에파타>는 비단 오늘 복음이 선포되는 장소와 시간에 국한되는 말씀이 아니며, 이 말씀은 복음이 전파되는 세상의 모든 곳과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지속될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도 세례성사에서 <열려라, 에파타> 예식 때, <주님, 귀와 입을 열어주시어, 뽑힌 이들이 귀로 들은 신앙을 입으로 고백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하고 사제는 기도합니다. 이 예식의 기도문은 오늘 복음 말씀에 기초를 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사람들의 ‘막혔던 귀가 열리어 복음 말씀을 듣고, 닫혔던 입이 열리어 하느님을 찬양하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우리 역시도 단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입으로 고백하고 삶을 통해 전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다짐합시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그 말씀을 입으로 전하게 하시며, 삶을 통해 선포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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